<단오풍정>부터 <정조 어진>까지…100점 넘는 모작(模作) 그려내고 손 대역도 맡아

 

 “직접 따라 그리면서 김홍도의 마음이 되고 신윤복의 손이 되어야 했죠. 그릴 때마다 그림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죽하맹호도(竹下猛虎圖)>부터 <단오풍정(端午風情)>까지, 김홍도와 신윤복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는 수많은 그림이 등장한다. ‘인물’은 배우가 재현하는데, ‘그림’은 누가 되살려 낼까? 다시 태어난 명화(名畵)는 우리 학교 이종목 교수(동양화과)와 우리 학교 출신인 안국주(동양화·95년 졸)·백지혜(동양화·98년 졸)·구세진(한국화·07년 졸)·김미영(동양화·08년 졸)씨의 작품이다. 12일(수) 우리 학교 후문 쪽 봉원사 길을 따라 그들의 작업실을 찾아가봤다.
 금동헌(今東軒)이라 불리는 작업실은 집처럼 안락해 보였다. 벽면에 인물화, 얼굴 스케치와 드라마 일정표가 어지러이 붙어 있었다. 방에서는 안국주씨가 신윤복의 <청금상련(聽琴賞蓮)>을 따라 그리는 데 한창이었다. <청금상련>에는 연꽃이 핀 마당에서 양반과 기생이 가야금을 타며 한가롭게 즐기는 모습이 담기고 있었다. 안씨가 형광등 위에 사본을 대고, 그 위에 화선지를 덧대 조심스레 붓을 움직이니 가늘고 부드러운 선이 이어진다.
 이종목 교수가 ‘바람의 화원’ 참여를 제의 받은 것은 올 2월이었다. 그림을 재현해달라는 제안을 받은 직후 이 교수는 드라마의 내용이 픽션(fiction)이라는 점 때문에 망설였다. “일주일 동안 원작 소설을 읽어본 후 승낙했어요. 내용도 흥미로웠고, 이 정도면 한국화의 매력을 알리기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나 조선 회화의 절정기인 18세기의 작품 50여 점, 완성되기 전 모습까지 합쳐 100점도 넘는 양을 혼자 재현하기는 무리였다. “드라마 전개상 풍속화 뿐 아니라 어진화사 등 견화(비단그림)도 다수 출연합니다. 각 분야 최고 기량을 가진 작가들을 섭외했지요” 그렇게 풍속·인물화는 안국주씨가, 견화·어진화사는 백지혜씨가, 의궤도와 기타 장르는 구세진씨가 맡게 됐다. 중간에 합류한 김미영씨는 초상화 작업을 도왔다.
 참여를 결심한 후 그들은 올해 내내 작업에 매달렸다. 그려야 할 그림이 결정될 때마다 자료수집 후 감독·작가와 회의를 진행했다. 크기와 색감, 스토리에 맞는 포인트 등을 정하고 나서 초뜨기(밑그림)를 시작했다. 그림이 그려질 당시의 생생함을 살리기 위해 늘 ‘원본의 200%를 재현하자’는 마음으로 작업했다.
 “그림을 따라 그릴 때마다 작가의 매력을 발견했죠” 안국주씨에게는 작가 입장에서 그림을 왜 그렸는지 상상하는 일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안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평민의 모습을 한 신선’을 그린 김홍도의 <군선도(群仙圖)>를 꼽았다. <군선도>는 한 폭이 백지인 8폭의 병풍이다. 1폭이 왜 백지가 됐는지 이야기를 구상하던 중 ‘원래는 그림이 있었는데 윤복이 실수로 물감을 튀겨 한 폭을 없앤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는 사라지기 전의 병풍 한 폭을 완전히 자신의 상상력으로 그려내야 했다. “제가 김홍도가 되어 ‘왜 이 그림을 그렸는지’ 상상할 때 가장 즐거웠어요. 개인적으로 김홍도의 그림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백지혜씨에게는 최근에 그린 정조 어진(왕을 그린 그림)이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실제 정조 어진은 남아 있지 않지만, 한번 그려보자는 마음에 백씨는 치밀하게 자료를 수집했다. “그림 구상까지 3주가 걸렸어요. 허리띠부터 복장, 다른 어진들도 모두 살펴보고 다녔죠” 구상 후에는 일주일에 5일씩, 3달간 어진에만 매달렸다. 고생한 만큼 보람도 있었다. 뒷면 채색 등 어진의 제작과정을 일반인에게도 알릴 기회가 됐기 때문이다.
 그림에 관련된 것을 모두 꼼꼼히 재현하다 보니 소품이나 내용에도 조금씩 관여하게 됐다. 드라마 초반에 신윤복이 간장으로 그림을 그리는 장면은 이들의 아이디어였다. 실제 화가들이라면 서로 이야기하며 놀다가도 종종 주변의 물건으로 그림을 그리기 때문이다. 2화에서 김홍도가 호랑이에게 쫓기며 목탄으로 스케치하는 장면도 이들이 제안했다. “원래 대본대로라면 김홍도가 호랑이 앞에 종이를 깔고 앉아 그림을 그렸을 거에요”
 그림 그리는 장면 속 손도 이들이 연기했다. 손만 촬영하는데도 옷을 모두 갖춰 입어야 했다. 구세진씨는 촬영 내내 감투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집에 갈 때는 이마에 감투 자국이 남기도 했다고. 촬영장에 들락거리다 보니 재미 있는 일도 겪었다. 안국주씨는 스턴트맨으로 오해 받기도 했다. “키가 배우와 비슷해서인지 눈에 띄었나 봐요. 촬영장에 서있는데, 갑자기 끌고 가더니 옷을 입히는 거예요. 하하” 그래도 한국화를 조금이라도 더 알릴 수 있다는 마음에, 그림 그리는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전문가로서 두 대가의 삶을 허구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불편하지는 않느냐고 묻자 이종목 교수는 손을 저었다. 그는 “팩션(Faction)은 10%의 사실과 90%의 허구로 이뤄지는 것”이라며 “‘바람의 화원’은 역사 스페셜이 아닌 드라마 스페셜인데 역사를 운운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드라마가 한국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새로운 연구의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어떤 시각으로 한국화를 감상해야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 그는 “애정”이라고 답했다.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을 갖고 보면 스스로 찾아 공부하게 되고, 감상포인트는 절로 알게 된다고. 산수화가 그 예다. 서양화에 익숙한 사람은 산수화에 원근법이 없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는 사람은 나뭇잎 하나도 무시하지 않는 동양화의 완벽함을 깨닫는다. “이 맛을 알고는 동양화에 푹 빠졌지요”
 문득 ‘바람의 화원’의 명대사가 떠올랐다. “그린다는 것은 그리움이 아닐는지요. 그리운 사람이 그림이 되고, 또한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 사람이 그리워지니 이는 그림이 ‘그리움’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움은 애정에서 비롯되고, 애정은 이 교수와 네 화가들이 한국화를 생각하는 마음이 아닌가. 이들은 어느새 김홍도와 신윤복을 꼭 닮아 있었다.


박현주 기자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