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나의 어린 네 명의 아이들도 피부색이 아니라 그들의 인격으로 판단되는 나라에 살게 될 것이라는…”

1963년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루터 킹 목사의 ‘I Have a Dream’이라는 연설문의 내용이다. 45년이 지난 지금 그 꿈이 이루어졌다. 불과 143년 전만 해도 노예제도가 존재했던 미국에서 첫 흑인 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버락 오바마, 우리는 그의 미국 대통령당선을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말한다. 이 역사적인 선거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두 후보 간 인종차이가 선거 전략으로 이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거당일까지 우려됐던 ‘브랜들리 효과(여론조사에서 흑인후보를 지지해도 실제 선거에서는 백인에게 투표하는 현상)’ 역시 작용하지 않았다. 백인 유권자의 43%가 흑인 후보인 버락 오바마에게 표를 던졌다는 것은 미국사회 내 인종차별 장벽이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이번 대선으로 미국은 인종차별 장벽을 넘었다는 축제의 환희에 젖어있다. 그러나 정치권 내 여성차별이라는 또 다른 장벽이 남아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 첫 흑인 대통령의 출현은 소외계층인 유색인종이 기득권층인 백인을 넘어설 수 없다는 기존의 정치틀을 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지난 6월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패배는 여전히 정치권 내 ‘남성’이라는 기득권이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역시 올해 있었던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대선후보 진출 실패는 정치권에 여전히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 막는 유리천장(Glass Ceiling)이 존재함을 증명한다.

이제는 정치권 내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을 제거해야 할 때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여성에 대한 정치적 차별은 인종차별이나 계급차별보다도 극복되기 어려운 영역인 것처럼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선거권 확대다. 미국 수정헌법에 따르면 여성에게 투표권이 부여된 것은 1920년으로 흑인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1860년에 비해 50년이 느리다. 영국 역시 도시노동자, 농촌·광산 노동자에게 선거권이 주어진 이후에야 여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했다.

여성 선거권이 보편화 된 이후에도 여성의 정치권 진출에는 진입장벽이 존재했다. 18일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 자료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여성 의원의 비율 평균은 18.4%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여성의원 비율 역시 여성비례할당제 도입 이전까지 한 자리 숫자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여성의 정치권 진출에 유리천장이 상당히 두껍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성의 정치권 진출에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유리천장에 1천800만개의 금을 가게 만들었다.” 버락 오바마와 민주당 경선에서 팽팽한 싸움을 벌였던 힐러리 클린턴상원의원의 말이다. 그는 비록 경선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지만 여성 정치인의 진출을 가로막는 장벽을 걷어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여성 국무장관이라는 자리에 오른 콘돌리자 라이스 역시 유리천장에 금을 그은 인물 중 하나다. 그는 남성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국방이라는 정치 분야에서 여성의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새라 페일린이 지목된 것도여성 정치권 진출 길목을 넓힌 그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권 이외에도 세계 곳곳에서 정치권 내 유리천장이 사라지고 있다. 르완다에서는 지난 15일 하원 전체 의석 80석 중 44석(55%)을 여성이 차지해 여성의원 비율이 절반을 넘는 ‘여초의회’가 탄생했다.

정치권 내 금녀의 벽도 무너지고 있다. ‘신사들의 성소’라 불리는 영국 보수당의 정치조직 ‘칼튼 클럽’은 지난 5월 176년 만에 여성 정회원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또한 인도의 첫 여성 대통령 프라티바 파틸, 독일판 마가렛 대처로 불리우는 앙겔라 메르켈총리 등 국가원수로 자리매김 하는 여성들도 늘고 있다.

‘여성들에게 책임을 맡겨라. 그러면 감당할 능력이 생긴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그의 저서 ‘제2의 성’에서 여성의 힘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린 구절이다. 마틴루터 킹 목사의 꿈이 45년 뒤인 현재 이뤄졌듯이 보부아르가 언급한 여성의 힘이 정치권 내에서 곧 이뤄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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