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행신동에 사는 이정아(35·지적장애 2급)씨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서울시 노원구에 있는 직장으로 출근한다. 지하철만 총 34정거장에 두 시간 반이나 걸리는 고된 출근길. 그러나 회사로 향하는 출근길은 행복하기만 하다. 그는 오늘도 9시에 문을 여는 공장에 3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그의 일터는 ‘머리 위에 올리는 행복’을 만드는 ‘동천모자’ 공장이다. 이씨의 행복한 출근길을 만들어 준 이는 동천모자 사장 성선경(국문·62졸)씨다.

근로시설 동천모자는 전 직원 77명 중 45명이 IQ 50~70의 지적장애인들이다. 이들의 지능 수준은 7살 어린이 정도다. 이들과 함께 모자를 만드는 성 대표는 졸업 후 KBS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그는 결혼 후 시어머니가 운영하던 영아원을 물려받으면서 본격적으로 복지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후 동천학원을 설립하고 동천학교 교장까지 지냈다. “학교를 졸업한 장애인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우연히 모자공장을 견학했죠” 그는 모자를 만드는 일을 보며 ‘이정도 일은 우리 아이들도 할 수 있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1~2년 정도 재봉 교육을 시켜보니 쿠션·앞치마를 곧잘 만들더군요. 재봉이나 가격표 달기 같은 단순 작업은 우리 아이들이 일반인들보다 더 꼼꼼하게 잘해요”.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모자를 만드는 동천모자는 유명의류브랜드 EXR·Converse·HEAD 등과 정부기관에 모자를 납품한다. 동천모자는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0월 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인증서를 받았다.

지금의 동천모자가 있기까지 시행착오도 많았다. 초반에는 시장에서 팔리는 저가 모자를 만들었는데 중국산과 가격경쟁에서 밀렸다. “사업 경험이 없어 고생을 많이 했어요. 납품대금을 못 받은 일이 허다하고 사기도 많이 당했죠”. 여러 번의 실패 끝에 동천모자는 3년 전부터 고급모자 생산으로 방향을 바꿨다. 디자이너 3명을 영입하고 매출액의 15%를 디자인 및 신제품 개발에 투자하는 과감한 개혁을 실시했다. 그 결과 직원 1인당 매출액이 110만 원 정도인 어엿한 장애인 근로복지시설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이 장애인이 만든 물건이라는 이유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때면 상처도 많이 받았다. “아직도 장애인에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아요. 좋은 물건이라도 장애인이 만들었다고 하면 고개부터 내젓죠. 처음 계약할 때는 아예 장애인 근로시설이라는 말을 안했어요”. 지금은 일본 바이어가 동천모자의 엄격한 불량제품 선별과정을 보고 “더 이상 볼 것 없다”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그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성 대표는 시설투자뿐 아니라 장애인 재활프로그램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기본적으로 직업에 필요한 기술과 수행훈련 이외에도 사회적응 훈련도 함께하고 있다. 전화나 식사 예절은 물론 금전관리·성교육 등도 진행한다. 교육을 통해 동천모자에서 근무하며 자립한 장애인들이 많다. 포장팀장 이대길(31·지적장애 3급)씨는 재작년 지적장애 3급인 동료 직원과 결혼했다. 최근엔 한 푼 두 푼 저축한 돈으로 18평짜리 전세 아파트를 마련했다. “작년에 태어난 아들이 올 9월에 첫돌을 맞아요. 이런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 있고 행복합니다”

그의 목표는 거창하지 않다. ‘아이들’이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회사를 유지하고 키워나가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장애인들이 하나의 사회인으로 성장해 독립할 수 있게 하는 생산적 복지를 확대하고 싶어요.” 동천모자 식구들의 9가지 생활다짐 중 4번째 다짐은 “나는 오늘 행복을 만들겠다”이다. 어엿한 가장인 된 대길씨나 고된 출근길이 즐겁기만 한 정아씨 모두 오늘도 ‘행복’을 만든다. 이은지 기자 eunggi@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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