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경제위기는 미국 정치경제 지도력의 위기
미국발 경제위기는 미국 정치경제 지도력의 위기
  • 남궁곤 교수
  • 승인 2008.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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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 경제위기 전개 양상이 심상치 않다. 이번 위기의 본질은 미국의 정치경제질서관리실패에 있다. 이번 위기로 미국이 행사해 온 지도력이 심각하게 훼손됐음이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신(Neo) 브레턴우즈 체제 구축과 국제금융기구 신설을 처방으로 내 놓고 있다. 1944년 브레턴우즈 협정 체결 당시 무역과 금융의 자유화 정신을 회복하자는 뜻이다. 국제사회는 미국에게 협력정신과 신뢰 회복을 주문하고 있다.

특정국가가 정치경제 질서를 성공적으로 주도하는 데는 세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국제질서를 유지할 능력을 갖추어야 하고, 둘째, 정치경제 지도력을 행사할 의사가 있어야 하고, 셋째 다른 국가들이 수긍할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 지도력 현실은 브레턴우즈 체제 출범 시기와 다르다.

브레턴우즈 체제 출범 당시를 보자. 능력 차원에서 100여년을 지도국가 위치에 있던 영국과 파운드화는 능력을 이미 상실했다. 대신 미국은 전쟁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창출할 군사적, 경제적 능력을 충분히 확보했다. 핵무기로 군사적 우위를 유지했고 미국 달러화는 기축통화 지위에 올랐다. 공황 재발 방지를 위해 금에 달러가치를 고정시키고 여타 통화가치를 달러에 연동시키는 금태환 고정환율 제도를 도입했다.

미국의 질서유지 주도 의사도 분명했다. 대공황을 성공적으로 이겨낸 자신감이 있었다. 금융 및 경제위기를 공공투자 확대란 비상조치로 극복했다. 미국은 자유무역과 금융자유화를 뒷받침할 국제기구 창설을 주도함으로써 리더십 행사 의지를 천명했다.

냉전 상황은 미국 지도력에 신뢰를 부여하는 데 결정적이었다. 유럽 국가들은 재건을 위해, 저개발 국가들은 근대화를 위해 미국으로부터 지원과 원조가 절실했다. 미국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능력과 의지에 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지원과 원조 명분으로 신뢰를 확보한 셈이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지도력 행사 조건은 다르다. 미국의 질서유지 능력은 제한적이다. 군사적 능력은 유지되고 있지만 경제질서 유지 능력은 취약하다. 미국 달러 가치는 더 이상 금값으로 치룰 수 없다. 40여 년 전 미국 스스로 금태환 정지 선언을 통해 이를 자인했다. 유로화의 등장으로 달러화 약세는 10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최대 외환 보유고 국가 자리도 중국에게 내주었다. 만성적인 무역적자로 미국경제의 체질 개선도 쉽지 않다.

신뢰 차원에서도 미국의 신인도는 낮다. 미국에게 지도력을 빼앗긴 유럽 국가들의 시선이 차갑다. 통합된 유럽 시장은 달러 주도의 미국시장과 경쟁관계에 있다. 유럽인들에게 미국의 공공투자 비율은 낮고 투자 영역도 공익성을 띠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고부가가치 산업을 고집하던 미국의 금융계는 투기와 대출만이 넘치는 카지노장과 같다. 미국과의 공조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전쟁에 몇 차례 동원된 유럽인들의 분노도 심상치 않다. 세계노동 시장 분업에 참여했던 저개발 국가들의 입장도 바뀌었다. 미국이 공해산업과 노동집약 산업만을 넘겨준 사실에 분개한다. 개발도상국의 산업과 금융계는 인수합병이란 이름으로 월가의 손에 운명이 달려있다.

이에 비해 미국은 정치경제 지도력을 유지하려는 의사는 아직까지 강하다. 미국은 세계경찰로서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미국에게 집단안보와 동맹전략의 병행이란 파행은 지도력 유지를 위해 불가피하다. 미국이 소프트 파워란 명분을 들고 나온 것도 달러의 약화와 미국 지도력의 약화를 상쇄하려는 표현이다. 관리변동 환율제란 편법으로 미국 금융지배 의사는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현재 새로운 정치경제 질서를 주도할 의사만 있지 능력과 신뢰는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 미국의 능력과 신뢰 저하는 미국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자유화 기조는 미국의 자국 이기주의 정책으로 퇴조했다. 미국은 수출에서 쌓인 외환을 미국의 금융자본, 특히 국채 등에 재투자하는 철저한 자국 중심으로 유지해 왔다. 국제 협력과 공조 정신은 퇴조했고 보호무역주의와 달러화 보호 정책이 대안으로 고착화되었다. 미국은 밖에서는 자유주의 안에서는 국익우선주의라는 모순된 정치경제 질서 원리를 적용하는 파행이 계속되고 있다. 외견상으로 금융의 국제화를 추구하면서 내면적으로 국내 산업구제 금융에 몰두했다. 무역보복과 관세율을 일방적으로 인상할 수 있는 수퍼 301조 발동은 미국식 이중적 태도의 전형이다. 초국경적 자유화를 강조하면서 이민법을 강화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이번 경제위기를 계기로 새롭게 논의되는 금융질서 재편 방향이 글로벌 금융경제의 상호 공존과 신뢰 회복을 추구하지 않는 한 이번 경제 위기의 근원을 근절시키기는 힘들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은행 국유화를 주장하는 것과 중국, 러시아, 브라질 등이 주장하는 금융의 탈미국화 해법은 모두 미국의 정치경제 질서 능력과 신뢰를 의심하기 때문이다. 내일 선거에서 대결하는 두 후보의 경제위기 타개 정책 방향이 이를 반영하지 않으면 세계인이 겪어야 할 고통은 새로운 대통령과 함께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