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논현동의 D고시원에서 차마 상상할 수조차 없는 끔찍한 방화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6명이 숨지고,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전과 8범인 피의자 정씨의 범행 사유는 간단했다. 그저 세상이 원망스러웠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범죄는 분명한 동기를 갖고 있다. 그러나 ‘묻지 마 살인’의 경우는 명확한 범행의 동기가 없다. 영국의 문명 비평가이자 소설가인 콜린 윌슨은 이러한 ‘묻지 마 살인’을 일종의 문명병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현대 사회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무수히 많은 범죄가 일어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도덕적인 불감증에 빠져있다. ‘묻지 마 살인’은 그러한 도덕적 불감증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형태이다.

한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발생한 ‘묻지마 범죄’는 39만 8913건으로, 전년보다 3만 6000건 늘어났다고 한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워킹푸어(Working Poor·아무리 일해도 빈곤을 탈출하지 못하는 근로 빈곤층)가 늘어나면서 뚜렷한 동기없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난과 소외에서 비롯된 범죄의 화살은 다시 평범한 소시민과 소외된 이들에게 꽂히는 경우가 많다. 이번 고시원 방화 살인 사건의 경우가 그렇다. 고시원에 거주하던 이번 피해자들은 대부분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허덕이고 있던 이들이다.올해 6월에 일어난 일본의 아키하바라의 ‘묻지 마 살인’ 역시 소시민을 겨냥한 비슷한 맥락의 범죄이다. 일본 정부는 이런 범죄가 점차 늘어나자 사회적인 방편을 마련하게 위해 고심해 왔다. ‘묻지 마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들 대부분이 소외계층이라는 것에 착안하여 소외계층의 상담 활성화 및 비정규직 처우 개선, 복지향상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정부도 보다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할 때이다. 무엇보다도 극악무도한 범죄자는 얼굴 공개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아키하바라 살인사건의 경우 피의자 가토 도모히로의 사진이 공중파 방송과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다. 이처럼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인권에 관해서는 우리보다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들도 반사회적 흉악범죄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여 유사 범죄 발생률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실제로 효과를 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물론 우리나라에서 범죄자 얼굴 공개 사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올해 7월부터 아동과 청소년을 상대로한 성범죄자의 얼굴과 신상정보를 열람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성범죄자의 신상정보만 열람할 수 있었지만 이제 얼굴까지 열람할 수 있게 되어 많은 이들이 이를 반겼다. 그러나 실제 시행 이후에 살펴보니,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 및 지역 학교 교장만이 열람할 수가 있는데다가 범죄자의 정보를 메모하거나 촬영하는 것은 금지돼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이는 오히려 피해자보다 피의자를 보호해주는 것은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졌다.

물론 범죄자에게도 인권은 있다. 죄질이 가벼운 범죄자의 얼굴이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사회적 재활 의지를 꺾는 것일 뿐만 아니라, 범죄자와 가까운 사이에 있는 사람들까지 피해를 입게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범죄자의 얼굴과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무척 신중해야하는 사안임에는 분명하다. 허나 이번 고시원 방화 살인 사건과 같은 반사회적인 흉악범의 얼굴까지 열심히 마스크와 모자 속에 감추어주어야하는 것인가. 이는 피의자의 인권을 지나치게 보호하여 피해자의 인권마저 잠식하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이번 고시원 방화 살인 사건의 피해자 故서진씨의 오빠인 서성철씨는 최근 미디어 다음 ‘아고라’에 피의자 정씨의 얼굴을 공개하라는 청원을 낸 바 있다. 이에 30일 현재 약 7천명의 누리꾼들이 서명에 참여했다. 서성철씨는 “살해자도 분명 인권이 있고 보호되어야 할 대상이나 종신형을 받을 자가 피해자 권익을 초월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면서 흉악범 얼굴 공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촉구했다. 실제로 범죄자의 얼굴과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그들의 여죄를 직접적으로 목격한 이들이나 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이들의 제보를 받을 수도 있고, 재범률도 낮출 수 있다. 또한 잠재적 범죄자들의 범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이들은 초상권 문제, 피의자 가족들이 받을 피해, 무죄추정의 원칙 등을 들며 범죄자 얼굴 공개는 옳지 않다고 말한다. 이에 법조계 및 정부에서는 양쪽의 입장이 모두 헌법적인 근거를 갖고 있기에 아직은 신중하게 접근해야할 때이며, 인권 보호와 아울러 국민들의 법 감정을 두루 고려하여 사회적인 합의 과정을 거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범죄자의 얼굴 공개에 대한 논의는 아직 분분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려다가 도리어 피해자의 인권을 잠식해서는 안될 것이다. 흉악범 및 성범죄자의 얼굴 공개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위한 특단의 조치라고 생각한다. 콜린 윌슨은 “편의를 위한답시고 정의를 희생하면서 제대로 운영되는 사회는 없다”고 말한다. 이처럼 정의가 실현되지 않으면 사회내부에 축적된 분노가 또다른 범죄를 양산할 수도 있다. 진정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기회비용을 잘 따져보아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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