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2000년대, 소설·시·신문기사 속 등장한 이화를 되짚어 보다!

‘이대 나온 여자’는 근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여성’의 대명사로 다뤄져왔다. 이화에 대한 시각은 여성에 대한 그 시대의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소설에서부터 시·신문기사에 이르기까지, 책 속의 이화가 걸어온 길은 어땠을까. 또 앞으로 걸어갈 길목에는 무슨 모양의 표지판을 세워야 할까. 문학 속 이화의 행로를 따라가 봤다.

△사치와 허영의 상징, 부르주아 이대생

『일류 며느릿감들이 다닌다는 이화여대에서 나는 질통을 짊어지고 시멘트와 벽돌을 날랐다. 발랄한 여대생들이 재재거리면서 오가는 학교에서 벽돌을 나르다가 문득 나는 저 아이들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생각을 했다. 평등사회라고들 하지만 부르주아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중략) … 그녀들이 신촌이나 명동의 레스토랑에서 웃고 떠들며 미팅하는 시간에, 나는 노동자들과 뒷골목 막걸리집에서 세상을 원망하면서 대폿잔을 기울여야 했다. (이수광, 「두물다리」, 2005)』

소설 속에서 이화는 종종 ‘부르주아’와 ‘사치’의 상징으로 활용된다. 위 소설은 육체적 노동에 시달리는 주인공에 이화여대생(이대생)들을 대비시켜 모든 이대생을 학업은 등한시하고 향락만을 일삼는 대상으로 묘사한다.

여성 소설가의 작품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소설가 공선옥씨의 「영희는 언제 우는가」(2003)에도 우리 학교가 등장한다.

『창석의 친구가 창석에게 속닥였다. “걔네들보다 낫다.” “누구?” “혜련이.” “와아, 지난번 미팅한 이대생?” “걔네 완전 부르주아야.” 영희와 나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발가락만 내려다봤다.』

작가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에게 모멸감을 주기 위한 도구로 ‘미팅에서 만난 부르주아 이대생’을 택한다. 이의 효과는 다음 구절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우린 잠이 왔던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렇게 눈을 내리깔고 있었는지도. 하지만 기가 죽었다고 해야 더 정확하리라.』

이러한 모습들은 60년대 후반 이문구의 소설 「김탁보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작품에는 ‘하질로 유명한 삼류 대학에 다닌다고 늘 웃곤 하던 자취집 주인딸’인 이대생이 등장한다.

김지연(철학·07)씨는 위 소설에 대해 “비중이 크지 않은 인물을 굳이 이대생으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우리 학교를 부정적 이미지화의 도구로 사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혜진(인문·08)씨는 “학구열은 물론이고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하는 등 정말 열심히 사는 이화인을 많이 봤다”며 “우리가 그런 식으로 그려지고 있는 사실이 억울하다”고 말했다.

명지대 조재연(문예창작·07)씨는 “편견을 가지고 창작한 작가 중 여대 출신은 없지 않느냐”며 “여권 신장에 대한 특정 집단의 열등감 표출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女‘학생’이 아닌 ‘女’학생, 이대생의 젠더화

여대생 ‘이화’, 그에게 정조 관념이란 없다. 자신에게 잠자리를 거부당한 남자가 자살을 택한 뒤 그는 생각한다.

『나를 원하는 사람은 거부하지 말자. 온 육체로 남성을 위로하자. 봉사하자.』

그는 그 후 불구적인 다섯 남자와 차례로 관계를 맺는다.

이 ‘이화’는 바로 조해일의 소설 「겨울여자」(1976) 속 주인공이다.

문학평론가 하응백(48)씨는 주인공 ‘이화’를 ‘남성의 모성지향과 성욕망에 끼워 맞춰진 수동적인 인물’(하응백,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이라고 지적했다.

김미현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소설 속 이화(伊花)는 이화(梨花)대학과 한자는 다르지만 배꽃처럼 순수하고 숭고한 이미지로 그려진다”며 “여성 엘리트들의 상징인 이화인은 모든 여성들에 대한 대표 단수 격으로 등장한다”고 말했다.

「겨울여자」 속 이화가 인기몰이를 한 지 20여년이 흐른 뒤에도, 우리 학교가 성적 상징으로 쓰이는 소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김정현의 「아버지」(1996)를 살펴보자.

『과일가게 아저씨는 언제나처럼 환한 모습으로 손님들을 대하고 있었다. (중략) … 언제나 요란한 그의 인사는 싫지 않았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어, 그래. 지원이구나. 야, 우리 동네 자랑 지원이가 갈수록 예뻐지네. 서울대보다 이화여대에 들어갔으면 메이퀸은 따 놓은 당상일 텐데.” 그는 여전히 예의 과장된 수다로 인사를 받았다. “아저씨도 참, 이젠 이화여대도 메이퀸 안 뽑아요.” “그래? 허… 거, 왜 안 뽑지?” 그는 못내 아쉽다는 표정으로 입맛까지 쩝쩝 다셨다.』

소설 속 ‘지원’은 이대생이 아닌 서울대생이 되면서 여성성을 소거 당한다. 여기에는 소설 속 그가 우리 학교를 학문의 장이기보다는 남성에게 어필할 수 있는 여성들의 집합체로 판단한다는 전제가 숨어있다.

이외에도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2)」(1994)나 최일화의 「태양의 계절」(2005)에서도 앞서 언급된 70년대의 ‘이화’를 발견할 수 있다.

2008년 7월 3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칼럼 <강력한 음기의 공간>에서 건축가 오영욱 씨는 ECC를 여성의 신체에 묘사하기도 했다.

『넓은 대지를 거대하게 파 내려가 비어 있는 공간을 형성하고, 상부는 완전히 녹지로 할애한 과감한 디자인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 라고 감상하기도 전에, 순간 그 비어있는 형태가 주는 강렬한 이미지에 나도 모르게 ‘헉’하고 낮게 신음을 토해냈다. ‘아니, 이건 너무 야하잖아.’ 마침 예술극장의 직원으로 일하는 여성 친구와 만났다. 편한 사이였기에 속을 털어놓았다. “음기의 절정이로구나.” 그녀는 “그거랑 너무 닮지 않았냐?”라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래서 우리 둘은 즉석에서 이 형태 없는 건축의 이름을 ‘음순당(陰脣當)’으로 지었다.』

본래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이자 정원’을 만들고자 했다는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의 ECC 설계 취지와는 상반된 평가다.

이은정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이화에 대한 비난은 아직도 이 사회가 넉넉히 품어안기 어려운 여성계급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라며 “그런 문학적·문화적 시각은 지금 이화에 대한 편견을 반영하는 것 뿐 아니라 이화의 실상을 왜곡하여 끊임없이 재생산하기 때문에 저항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항하고 운동하는 타대생… 이화 이미지 변화 시도

그렇다면 다른 대학들은 문학 속에서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을까. 이승철의 시 <내 청춘의 비망록>에는 수많은 운동가 대학생들이 등장한다.

『서울대생 박종철, 연대생 이한열, 명지대생 강경대에게 가해진 물고문과 (중략) … 조선대생 이철규의 멍빛 눈망울과 용봉골 처녀 전대생 박승희가 쓴 오월의 시편들과 (중략) … 성대생 김귀정과의 한스러운 이별과…』

위 작품에서 우리 학교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이밖에도 조정래의 「한강」(2001), 양귀자의 「슬픔도 힘이 된다」(1993) 등에서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사회변화를 주도하고 개혁하는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지만 그곳에 ‘이대생’은 없다.

김 교수는 “문학 속의 이러한 모습들이 시대가 변해도 이화인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증거”이며 “이제 새로운 시대를 맞아 사회에 대한 책임에도 최선을 다하는 진정한 알파걸의 이미지를 창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 발간된 한 소설에서는 이대생이 “대단한 여대생”으로 그려진다.

『그때 안내 방송이 들렸는데, 무심코 듣던 현주는 흠칫 놀랐다.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위를 할 때 법으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는 소리가 들려 왔기 때문이다. 아, 이게 바로 얼마 전에 시끄럽게 찬반 논쟁을 일으킨 지하철 성추행 경고 방송이구나. (중략) … 여성 단체들과 여대생들이 애써 추진한 결과 시행하게 됐다는데 (중략) … 그나저나 참 대단한 여대생들이야. 대중 교통수단이 생긴 이래 수십 년 동안 무수한 여자들이 말 못하고 당해온 성추행을 명명백백하게 드러내고 여론화시킨 여대생들. 문득 현주는 여대생들이 보고 싶어졌다. 용기 있고 발랄한 젊음들. 현주는 이대 입구에서 지하철을 내렸다.』

나이 든 미혼여성들의 삶을 통해 여성에 대한 편견과 여성에 대한 억압을 날카롭게 고발한 위 작품은 안이희옥의 「버지니아 울프가 결혼하지 않았다면」(2000)이다.

이 소설 속에서 여대생들은 페미니스트 카페에 모여 토론을 벌이는 등 가부장 이데올로기와 맞서 싸운다.

이진송(국문·07)씨는 “문학은 현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라며 “이화인이 공감할 수 있는 진정한 이화가 문학에 투영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러한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 이화인의 몫”이라고도 덧붙였다.

이은정 교수는 “이화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단순하게 반응하기보다는 우리가 좀 더 분석적일 필요가 있다”며 “여성에 대한 사회의 왜곡·폄하·조롱적 시선의 뿌리를 건드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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