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TV에서는 감성적인 음악과 함께 모 카메라 회사의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한창 주가를 올리는 여배우의 다양한 표정이 담긴 사진이 브라운관 위로 슬라이드처럼 지나갔다. 광고끝에 배우의 목소리와 함께 뜨는 카피. ‘사진은 말을 한다.’

인상적인 카피였다. 맞는 말이다. 사진은 말을 한다, 그것도 거의 매번. 각각의 사진은 각각의 이야기를 가지고 말을 걸어온다. 단지 우리는 그를 의식하지 못하거나 주의 깊게 들으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때로는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엄숙한 고찰과 진지한 토론을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무시로 만나는 친구들과 커피숍에 앉아 수다 떨며 가볍게 입에 올릴만한 내용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사진에 어떤 말과 어떤 이야기를 담을지는 전적으로 찍는 사람의 몫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학보사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는 필자도 사진에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담을 것인지 매번 취재를 하며 고민한다. 그리고 고민의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한다.

언젠가 지인들과 수다를 떨다가 학보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기자로 활동한다고 말하자 대부분은 ‘힘들겠다’·‘바쁘겠다’라며 매주 마감이 존재하는 빡빡한 삶에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러나 사진기자의 애환에 대해 늘어놓자 돌아왔던 반응은 당시로써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래도 사진이면 쉽겠네. 그냥 몇 장 틱 찍어오면 되니까.’

‘틱’ 찍는다고! 보도사진의 생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거나, 한 장의 사진을 찍으려고 갖은 노력을 해봤던 사람이 듣는다면 꽤 흥분할 소리였다. 사진기자들은 한 장의 사진을 찍고자 최소 수십·수백 장의 사진을 찍는다. 한 장의 사진에 여러 이야기를 함축하려고, 혹은 강렬한 한 방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 최후의 한 컷을 건져 올리고자 얼마나 많은 사진이 걸러지고 버려졌던가.

사진은 뭘로 찍을까? 정답은 ‘발’이다. 악필인 사람에게 ‘발로 썼느냐’라고 묻는다면 험담이 되겠지만, 사진기자들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인다. ‘발로 찍은 사진’은 말 그대로 발로 뛰어서 취재한 사진을 뜻한다. 기자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땀 냄새 물씬 나는 사진이다. 이렇게 발로 뛰어 찍은 사진은 쉽고 편하게 찍은 사진보다 많은 이야기를 내포한다.

어떤 나라를 여행하기로 한 두 명의 사람이 있다고 하자. 한 사람은 이곳저곳 구석구석 제 발로 걸어다니며 여행했고 다른 사람은 패키지로 편하게 다녀왔다. 과연 어떤 사람이 그 나라에 대해 남들이 모르는 더욱 풍부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사진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번 방학 중에 일간지 사진부에서 실습 할 기회가 있었다. 실습 기간에 사진기자들과 취재 전반에 관한 내용뿐만 아니라 사진기자로서의 삶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의 취재 현장을 목격하고 그 살벌한 전쟁터에 나의 무기­-카메라­-를 함께 찔러 넣었다. 거의 모든 취재는 몸싸움과 자리싸움을 수반했다. 그렇지 않은 취재는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창의적이고 신선한 구도를 필요로 했다. 그러면서 사진기자들이 겪는 고충과 고민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독일의 현대사진가인 안드레 겔프케는 흑백사진만을 고집하는 사진가였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사진은 독백이고, 또 하나는 나의 대화다. 사진은 리얼리티 속에서 발견된 자신의 무의식이 만들어 낸 산물이고 자기의 내적 영상이다.’ 사진에는 찍는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다. 그렇기에 구도나 색·소재의 선정에서도 무의식중에 자기 자신이 조금씩 묻어나온다. 이는 ‘동일한 사진가가 찍은 사진은 모두 한 작품 군을 형성해야 한다’라는 수잔 손탁의 말과도 일정 부분 상통하는 내용이다.

때론 한 장의 사진이 백 마디의 말을 대신한다. 사진은 종종 장문의 기사에도 담을 수 없는 깊은 인상과 영감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은 그 무엇, 인쇄된 활자에는 묻어나지 않는 무언가를 전달할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사진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과 만나기를 원한다. 더욱 다양하고 폭넓은 주제에 대해 사진으로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 그럼 달리 방법이 있나, 오늘도 배터리를 풀로 장전하고 그저 찍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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