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 밖으로 나온 300년전 우리 옷
고서 밖으로 나온 300년전 우리 옷
  • 장한이 기자
  • 승인 2008.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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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원삼이 고풍스러운 자태를 뽐낸다. 금방이라도 새색시가 입고 수줍은 미소를 지을 듯하다.

의류직물학과 전통복식연구실이 1일(수)∼6일(월) 오전10시∼오후6시 안국동 ‘갤러리 올’에서 ‘우리 옷 책에서 나오다’를 주제로 전시회를 했다. 5월부터 약 4개월간 15명의 학생이 만든 15개의 작품이 전시됐다. 작품들의 배경은 17세기∼18세기 조선시대다. 김지연 박사(의류직물학과)는 “조선시대문헌에 나타난 복식 사료를 실물로 재현함으로써 우리 전통복식에 대한 이해를 더욱높이고자 했다”며 “문헌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에 유물·회화 등도 참조해 철저하게 고증된 작품을 제작했다”고 말했다.

녹원삼은 영조의 2녀 화순옹주의 유품을 기본으로 재현한 궁중양식의 옷이다. 원래 공주와 옹주가 대례식때 입는 녹원삼은 일반 양민들이 결혼식에서 입기도 했다. 원삼의 금박은 포도와 아기를 나타내 다산을 상징한다.

푸른 옥빛을 머금은 모시로 된 홑옷인 액주름은 조선시대 남성이 평소에 입는 포이다. 양쪽 저고리의 겨드랑이를 타고 시선을 내리면 스커트에 많이 쓰이는 주름이 멋스럽게 잡혀 있다. 겨드랑이 액(腋)자와 주음(注音)의 음가를 따서 액주름이라 부른다. 「조선왕조실록」의 임진왜란 이전 시기 기록과 「가례도감의궤」등에 실린 고종 때 기록을 바탕으로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하고 있는 이언충의 액주름포를 재현했다. 액주름의 경우 사극을 통해 나온 적이 없어서 일반인들은 보기 어려운 작품이다.

오늘날의 조끼와 매우 비슷한 형태의 개가죽 배자도 눈에 띈다. 배자는 조끼가 들어오기 전에 등과 배를 따뜻하게 하기 위해 입던 옷으로 서양의 조끼와 달리 주머니가 없고 옆이 트여 있다. 개의 가죽을 무두질해 만든 것이 개가죽배자다. 조선 중기 문신인 윤근수의 「월정만필」에서 조선 전기 문신 김안국이 한밤중에 찬 공기를 막으려고 평안도 관찰사인 친구로부터 개가죽배자를 빌려 입었다고 쓴 기록을 바탕으로 옷을 재현했다. 깃의 모양은 「악학궤범」의 오색단갑 그림을 참고해 만들어 정사각형 모양이다. 배자를 본 한국전통문화학교의 도선아(전통미술공예)씨는 “섬유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는데 개가죽으로 만든 배자는 처음 봐서 신기하다”며 “문헌을 바탕으로 전통복식을 재현한다는 것이 신선했다”라고 말했다.

사극에 나올 듯한 연두색 저고리와 노란 저고리가 나란히 벽에 걸려 있다. 각각 17세기와 18세기의 복식이다. 17세기 저고리는 「인목왕후 반전도감의궤」와 경기도 박물관 소장 동래정씨 묘에서 출토된 복식을 참조해 조선 중기 당저고리를 재현했다. 저고리는 연두색이며 양 옆선이 트여 있다. 18세기 저고리는 윤덕희의 ‘독서하는 여인’에 나타난 여인의 옷을 바탕으로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경주 이씨 유물을 근거로 만들었다. 이 저고리는 삼회장이 특징이다. 삼회장은 소매섶·깃·곁마기의 색이 저고리의 기본색과 다르다. 17세기와 18세기 저고리는 길이가 다르다. 17세기 한복은 저고리가 허리까지 내려와 치마도 허리춤까지만 올라온다. 반면 18세기 저고리는 몸에 맞도록 길이가 짧아졌다.

이 밖에도 청현색의 철릭·토끼털과 물범털을 이용해 만든 털배자·어린 아이들이 입던 사규삼 등이 전시됐다.

이번 전시회에 온 서양화가인 정수영 씨는 “문헌에서만 보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다”며 “수준 높은 작품들이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