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혜 객원기자

아침7시, 고시실 문이 조용히 여닫히기 시작한다. 행정고시실 옆 휴게실은 커피를 뽑아 마시는 학생들, 신문을 읽는 학생들로 분주하다.

“늦게 일어나서 아침도 걸렀어요. 괜찮아요, 시간도 없는데 빨리 시작하죠!” 오전8시가 지나자 휴게실에는 스터디를 하는 학생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1분 1초가 아쉬운 듯 잡담은 짧게 끝나고, 학생들은 머리를 맞댄 채 문제풀이를 시작한다.

고시(考試)는 공무원 임용 자격을 결정하는 시험이다. 지금은 붙기 어려운 시험마다 ‘고시’라는 말이 쓰인다. 언론사 채용 시험 뿐 아니라 ‘취직하기 어려운 기업의 채용 시험도 고시’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그 중 학생들이 가장 많이 도전하는 ‘3대 고시’는 사법시험(사시), 행정고등시험(행시·외시) 그리고 언론사 시험이다. 우리 학교 솟을관(기숙사)·사법고시연구실·행정고시연구실·미디어커리어센터(언론고시실)에는 480여 석의 고시석이 마련돼 있다.

 

△이른 새벽부터 깊은 밤까지, 고시생은 연중무휴

의자에 걸린 옷가지와 책상에 쌓인 책 더미 때문에 행정고시실은 꽉 차 보인다. 시간도 잊고 책 속에 얼굴을 파묻은 고시실 학생들의 모습은 ‘연중무휴 시험기간’이다. 내년 2월 시험을 위해 행정학·경제학 등 6권이 넘는 기본서를 숙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ㄱ(경제·02)씨는 이화­포스코관 7층에 있는 행정·외무고시연구실(행정고시실) 옆 휴게실에서 하루를 연다. 오전7시30분, 그는 휴게실에서 신문을 읽은 후 바로 공부를 시작한다. 9시에는 조교의 출석체크가 있다. 10시가 되면 수업을 듣고, 점심을 먹고 나서 다시 공부에 매진한다. 저녁시간 이후에는 과목을 바꿔 공부한다. 하루에 두 권씩 돌려가며 공부하지만, 여섯 과목을 정복하기에 24시간은 턱없이 짧다.

어느덧 고학번이 돼버린 그는 하나 둘씩 취업하는 친구들을 보며 취업과 공부 사이에서 고민하기도 했다. “공부하다 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과정이죠. 그래도 희망을 갖고 갈등을 이겨내려고요”

주말이나 연휴도 마음 편히 넘기지 못한다.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ㄴ씨는 주말에도 고시실에 나와 공부한다. “오늘만 그래요, 주말에는 별일 없으면 쉬어요”라며 손을 젓는다. 이번 추석 연휴를 어떻게 보냈는지 묻자 역시나 고시생다운 대답이 나온다. “저는 하루만 쉬고 공부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신림동으로 ‘추석 특강’ 들으러 갔을 거고요”

 

△시험 가까울수록 초민감, ‘소음 절대 금지’ 사법고시연구실

법대 고시연구실 문에는 ‘구두소리! 살살 걸어주세요’나 ‘핸드폰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거슬리니 나가서 해주세요’ 등의 메모지가 붙어 있다. 곳곳의 책상 칸막이에는 큰 판자가 덧붙여져 있다. ㄷ(법학·04)씨는 시야가 다른 곳으로 분산되지 않도록 책상칸막이에 스티로폼 판자를 붙였다. ㄹ(법학·05)씨는 “구두 신고 걸을 때·사물함 여닫을 때·카세트 돌릴 때 특히 조심한다”며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라고 말했다.

시험 날짜가 다가오면 사법시험 준비자들의 신경은 한층 더 곤두선다. ㅁ(법학·02)씨는 “시험이 가까워지면 문자 보내기 금지·휴대폰을 무음모드로 해달라는 쪽지가 평소보다 더 많이 붙는다”고 말했다. 고시연구실에서 2년 동안 공부해 온 박지원(법학·04)씨는 “시험을 앞두고 정신 없이 공부하다 ‘책장 넘기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쪽지를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언론사 채용기간을 맞아 언론고시실의 분위기도 뜨겁다. 이곳에서는 다들 오래 공부한 사람들이라 서로 얼굴을 익혔다. 기자직 시험을 준비 중인 임윤주(언론·04)씨는 “신문 스크랩 때 칼보다는 가위를 이용하는 등 스스로 주의하게 된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의 많은 시간을 희생하는 장소이자 희망이 살아 숨쉬는 곳. 하루에 10시간 남짓, 480여 명이 머물다 가는 이화의 고시실은 오늘도 열정· 희망·절망이 교차하는 꿈의 전쟁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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