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촌의 대모, 가난한 아동 위한 정책 만들고 싶어
빈민촌의 대모, 가난한 아동 위한 정책 만들고 싶어
  • 이영신 기자
  • 승인 2008.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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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순 의원실에는 빈민 아동들과의 추억이 담긴 물건이 가득했다. 벽에 걸린 액자에는 아이들이 손으로 직접 적은 응원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액자에 그려져 있는 소는 울면서 무거운 짐이 실린 수레를 끌고 있었다. 당선 직후 “죽을 각오로 빈민 아동을 위해 일하겠다”고 소감을 밝히던 강명순 의원의 모습이 투영된 듯했다. 한나라당 강명순 의원을 2일(화) 국회의원회관 의원실에서 만났다.

 

△비례대표 1번으로 선정된 이유는

빈곤ㆍ결식아동이 한 명도 없는 나라를 만들고자 법을 제정하고 바른 정책을 세우도록 선정됐다고 생각한다. 나는 빈곤ㆍ결식아동들과 35년을 함께 해왔다. 그들의 눈물과 한숨·아픔과 슬픔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한나라당과 강 의원의 이미지가 잘 안 어울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는 한나라당이 부자들을 위한 보수적인 당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6개월간 지내면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빈곤문제 해결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많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5월에는 10여 명의 초선의원들이 뚝방촌 노인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힘썼다. 6월에는 국민에게 국회가 개원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는 심정으로 29명의 의원이 세비를 반납해 결식아동들에게 나눠 줬다.

 

△18대 원 구성이 약 3개월 늦어졌는데, 그동안 무엇을 했나

심재철 의원과 공동대표로 빈곤퇴치연구포럼을 만들었다. 빈곤퇴치연구포럼에는 한나라당·민주당 국회의원 40여명이 함께 한다. 포럼의 목표는 빈곤층이 건강한 사회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중장기적인 정책을 만드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달라진 점은

빈곤아동ㆍ청소년 지원문제에만 국한됐던 나의 좁은 시야와 한계점을 깨달았다. 예전에는 보건복지부와 관련된 자료만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빈곤문제에 대한 다른 부처의 자료를 포괄적으로 볼 수 있어 좋다.

단점은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전에는 정의롭지 못한 일이 있으면 즉시 나의 의견을 말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무조건 참아야 한다.

과거에는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소리에 함께 눈물짓고 내가 가진 것들을 마음껏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선거법 때문에 축의금ㆍ부조금은 물론 내 이름으로 책 한 권·쌀 한 톨도 나눌 수 없어 안타깝다.

△이화에 다닐때 어떤 학생이었나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이었다. 종교를 가리지 않고 불교ㆍ가톨릭학생회에서 하는 수련회에 참여했다. 각종 특강을 빠지지 않고 듣는 등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인생의 전환기는 한국기독학생회 총연맹(KSCF) 빈민봉사수련회에 참여했던 것이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빈민 아동들을 만났다. 나는 가난한 창동 지역 아이들과 노래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손가락에 매달려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들을 만나고 난 후 빈민선교활동을 시작했다. 내 삶에 아이들은 축복이고 기쁨이다. 아이들처럼 무소유와 맑은 영혼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됐다.

 

△후배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은

이화여대를 다니는 것은 선택받은 삶이다. 빚진 자의 마음으로 가난한 여성들의 권리를 위해 일하는 여성지도자가 많이 배출되길 기도한다.

 

△앞으로 어떤 정치인이 되고 싶은가

나는 정치인이 아니다. 빈곤ㆍ결식아동을 위해 정책과 법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불리고 싶다. 빈곤ㆍ결식아동과 빈민가족들이 요구 하는 법과 지원체계를 만들고자 힘을 다하겠다.

이영신 기자 harry0127@ewhai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