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다. 얼마 전 대학생 친구들에게 단체로 문자를 보내봤다. 요새 가장 관심 가는 주제가 무어냐고. 문자를 일일이 확인하고 나니 머리가 쭈삣 서면서 숨이 턱 막혔다. 학점, 시험, 면접, 진로, 과제라는 답문이 가장 많았고 그 와중에 그나마 한숨 돌릴 수 있게 한건 사랑 이라는 답문이었다(물론 사랑의 치열함을 절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렇게들 치열하게 바쁘게, 한편으로는 힘들게 사는 구나 새삼 깨달으면서 어쩌면 이 주제들은 대학생들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비슷한 고민일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아침 수업을 끝내고 바쁘게 내려가 후딱 점심을 먹고 다음 수업을 들으러 바삐 향하는 발걸음. 팀플은 진행 중이고, 면접은 코앞인데다가 과제가 주어지고, 중간고사는 다가온다. 여기서 잠깐 쉬지 않는, 아니 쉴 수 없는 이유는 남들도 그렇게 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 하는 거 안 빼놓고 다하려니, 심지어 더 잘 하려니 힘들지 않으려야 안 힘들 수가 없다. 뭐 쫓아가다 뭐 찢어질 노릇이다. 언제나 그렇듯 취업이 걱정이고 학점에 경력에 동아리에 수상에, 일명 스펙을 공든 탑 세우듯 쌓으려니 진이 다 빠진다.

잠깐, 요새 가을이다. 그래서 하늘도 꽤 높고 푸르다더라. 그동안 우린 앞사람 뒤통수만 보면서 헐레벌떡 쫓아가느라 너무 앞만 보고 살았다, 살고 있다, 쭉 그렇게 살 예정일지도 모른다. 어디 멀리 갈 것도 없다. 잠깐만 고개 들어서 하늘 한번 보자. 복작복작 뒤섞여서 바쁘게 살고 있는 우리네 동네와는 또 달리 탁 트인 세계가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다. 올려다본 우리가 되레 무안하게 하늘 참, 푸르고 시원하다. 우리는 백만 서른하나, 백만 서른 둘,,, 쉬지 않고 윗몸을 일으켜대는 힘센 에너자이저가 아니다. 우리가 백만돌이가 될 이유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한숨 좀 놓을 필요가 있다. 당신이 하루하루를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다면, 그 하루하루들을 더 값지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쉼, 휴식이다.

늘 그렇듯 어차피 ‘해야 할 것’은 쉬지 않고 우리를 찾아온다. 연속될 수밖에 없는 일들 가운데서 가뿐히 벗어나 맘껏 쉬어줘야 할 마땅한 이유는 꽃 보다 아름다운 당신의의 생에 대한 예의라 하겠다. 이러한 일상의 연속에서 잠깐을 쉴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이만이 다음 스테이지로의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말인즉슨, 전쟁터 같은 일상 속에서 잠깐 멈춰 서서 하늘 한번 올려다보는 그 쉼의 기회가, 어김없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그 다음의 ‘해야 할 것’들을 완수해나가는데 필요한 필수 에너지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성취해낼 때의 활력과는 또 다른 일상의 활력을 쉼에서 얻음으로써 긴장 풀고 여유 한 번 더 찾고 가는 것이다.

다행히 쉴 짬이 생겼다면, 그 다음은 그 쉼을 어떻게 잘 이어나가느냐다. 당신은 잘 쉴 수 있는 힘이 있는가? 여기, 토요일 저녁에 신촌에서 각자 놀고 있는 두 사람을 살펴보겠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이 놀면서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를 연신 되뇌며 노는 A양과 그 순간을 온 몸을 다 바쳐 맘껏 놀아내는 B양이 창출해내는 가치 효용성은 현저히 다를 수밖에 없다. 이쪽에 한다리, 저쪽에 한다리 걸쳐놓고 어설픈 카사노바 마냥 어중이떠중이 식으로 노는 건 어느 책 제목처럼 인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질적으로 제대로 쉴 수 있는 힘이 아주 부족한 거다. 이미 당신의 마음속에서 쉼을 선택했다면 그 순간만큼은 맘껏 쉬어주고 놀아주는 게 동방예의지국의 한 국민으로써 삶에 대해 깍듯이 갖춰야 할 예의다.

이래도 놀기가 주저된다면, 주위 친구들 중에 놀 때 소위 ‘뽕’을 빼면서 노는 친구들을 유심히 봐라. ‘좀’ 노는 친구들 말이다. 그네들의 그 치열한 열의는 무언가를 성취하는데 있어서 분명 플러스요인으로 작용한다. 오호라, 선진일류국가 시민으로서 더 나은 성취와 업적을 위해 잘 놀아라, 그 말이냐? 뭐, 그럴 수도 있다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순전히 당신의 온전한 ‘쉼’을 위해서 여러 가지 떡밥을 이리저리 던지고 있는 것뿐이니 오해는 말라. 그 와중에 끌리는 떡밥이 있다면 그 중에 맘에 드는 것을 취해서 잘 놀면 된다. 바쁜 일상이 괴로워서 어금니 꽉 깨물고 오기로 쉬면서 노는 것이 아니라,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쉼에 완전히 몰두해서 놀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일찍이 저쪽 유럽에서는, 네덜란드의 J.하위징아(Johan Huizinga)라는 사람이 이미 ‘노는 인간’ 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바가 있다. 이를 호모루덴스라고 부르는데, 인류의 유희를 문화의 기원으로 보면서, 그간 인류를 정의해 왔던 다양한 정의 가운데 또 하나의 독특한 개념으로써 인류를 바라보고 해석한 개념이다. 쉽게 말해, 그에 따르면 우리가 이루어 낸 모든 문화는 유희 속에서 발달한 것이란다. 논다고 안 죽는다. 호모루덴스, 유희하는 인간들이여, 놀자, 잘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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