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방, 학생회실에서 빌려온 도구와 소품으로 표현해 낸 '빌려온 삶'

“언니! 옷걸이에 못 박아야 되죠?”

소극장 문을 열자 떵떵대는 망치소리가 귀를 울린다. 머리를 질끈 묶은 극단원 박미연(인문·08)씨가 드라이버·각목·톱 등이 널브러져 있는 무대 한 귀퉁이에서 망치질에 열심이다. 완성된 옷걸이는 빛바랜 소파의 오른편에 자리잡았다. 박씨가 옷소매로 이마를 훔치자 진한 땀냄새가 무대 위에 진동한다. 4년 만의 인문극회 공연 ‘결혼’이 25일(목)∼27일(토) 생활환경관 소극장에서 열렸다.

조명이 밝아지자 무대 앞쪽에 서있는 빨간 우체통이 시선을 끈다. 도색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페인트 냄새가 났다. 실제 톱질에서부터 색칠까지 모든 제작을 7명의 극단원이 직접 했다. 배우 김다은(정외·05)씨는 “작은 소품 하나까지 우리 손으로 만들어 더욱 애착이 갔다”고 말했다.

인문극회는 첫 공연 ‘춘향’을 1956년 무대에 올린 긴 역사의 인문대 연극반이다. 2004년 공연 ‘호요네 하숙집’ 이후 지금껏 공연을 올리지 못하다 4년 만에 공연을 열었다. 올해 6월 대본이 결정되고 일곱 명의 단원이 모였다. 여름방학 동안 각색·배우선정을 마치고 연습에 들어갔다. 일곱 명이 소품을 만드는 것부터 포스터 붙이는 일까지 모두 했다. 배우와 스텝 가릴 것 없었다. 그리고 9월, 그들의 연극 ‘결혼’이 드디어 식을 올렸다. 연극에 대한 극단원들의 순도 높은 열정과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문극회 김혜림 회장은 “이 희곡을 선택한 이유는 ‘빌리다’와 ‘관객과의 소통’에 있다”며 “타인의 도움 없이는 공연을 만들 수 없다는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연극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공연에 쓰인 많은 무대 도구들과 소품들은 교내·외에서 빌린 것들이다. 거울은 국어국문학과 과방에서, 소파는 인문대 학생회실에서 빌렸다. 합판은 사회대 연극반 ‘투명한사람들’이 쓰던 것을 가져와 색칠만 다시 했다. 이러한 인문극회의 ‘빌려옴’은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들은 잠시 빌린 것뿐이라는 공연 ‘결혼’의 주제와 맞물려 의의를 갖는다.

작가 이강백의 희곡 「결혼」을 각색한 이번 작품은 결혼을 통해 ‘우리 삶은 잠시 빌려 쓰는 것’이라는 인생의 의미를 전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한 여자가 결혼을 목적으로 부유하고 화려한 여자로 행세하며 사건이 벌어진다.

극 중간에 배우는 관객에게 직접 무대 소품을 빌린다. “담배 한 대만 빌려주시겠어요?” “그 스카프 딱 5분만 빌려주실래요?” 수없이 빌리고 돌려주며 연극이 진행된다. 무대 위에서 극을 진행하는 1분 1초까지도 빌려옴’의 의의를 충실히 재현한다.

하녀 역을 맡은 박미연씨는 “물건도, 가족도, 나의 생애도 빌려온 것인 이상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 ‘덤’ 역을 맡은 김다은씨는 “함께 땀 흘린 인문극회 사람들을 알게 된 것 자체가 내 삶의 덤인 것 같다”고 말했다.

네 차례에 걸친 공연을 마친 후 공연에 쓰인 물건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4년 만의 공연은 빌려옴으로 시작해 되돌려줌으로 끝난 것이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소멸하지 않는 것들을 남겼다. 25일 공연을 관람한 이연경(인문·08)씨는 “철학이 깃든 연극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이번 연극이 오랫동안 뇌리에 새겨져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고 말했다.

최아란 기자 sessky@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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