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는 40년 간 날 가르친 선생님이죠
이화는 40년 간 날 가르친 선생님이죠
  • 이대학보
  • 승인 2008.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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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령 퇴임교수 인터뷰
 

“학교에 좀 미안한 얘기지만 의외로 홀가분해.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설렘도 있고…”

23년간 몸담고 있던 이화를 떠나는 신인령 퇴임교수의 소감은 예상 외로 시원시원했다. 11일(목) 우리 학교 교수직을 정년퇴임하고 새로운 인생의 출발선에 서 있는 신 교수를 그의 새로운 사무실인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 이사장실에서 만났다.

재직 중 총장까지 역임한 그가 우리 학교에 머문 시간은 교수로서 23년 뿐 만이 아니다. 그는 학사·석사·박사과정까지 우리 학교에서 모두 마친 ‘made in 이화’다. “고향집 떠나는 것 같아”

그는 마음의 고향 ‘이화’에서 법과대학 교수이자 총장으로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지난 세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 항상 바빠서 한 번도 옷을 다 입고 집을 나선 적이 없어” 치열하게 살아온 덕에 남긴 공적도 많다. 그가 교수 재직 중 썼던 노동법 관련 논문들은 대단히 많다. 이를 기려 후제자들과 후학들이 기념논문집을 봉정할 예정이다. 총장 재직중에 금혼학칙조항폐지·대학구조개혁·이화 글로벌 파트너십 프로그램(EGPP) 등을 시작하기도 했다.

그는 이화에서 보낸 학창시절을 ‘축복’이라고 말했다. 평범한 학생으로 입학한 그에게 이화는 특별한 사명감과 역사의식을 심어줬다. “삶의 관점을 진지하게 가질 수 있도록 이화가 키웠지.”

“사실 나는 학교에서만 활동한 사람은 아니야” 그는 ‘가슴 뜨거운 현장가’이기도 하다. 학부시절 학생운동을 하며 수차례 경찰서를 드나든 그는 “서울시내에 안 들어가 본 경찰서가 없다”며 “내가 외골수라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죽을 각오로 일한다”고 말한다. 학생운동은 무기정학으로 이어졌다. ‘전국지명수배’령이 내려지면서 1년 간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도망다니는 동안 문제의식도 뚜렷해지고 나눔에 대한 생각도 커졌어.  갇힌 지식인이 아닌 현장에서 부딪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지” 그는 지명수배가 풀린 후에도 복학을 거부했다.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찾아와 제발 졸업장만 받아달라고 간곡히 권면하던 이태영 변호사(당시 법대 학장)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안 받는다고 고집했던 졸업장으로 총장까지 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며 웃는다.

62학번으로 입학해 40년이 넘게 이곳을 지킨 신교수에게 2008년의 이화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요즘 대학생들은 취업과 같은 개인적인 고민에 빠져 현실에 대한 역사적인 고민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 했다.

‘안이하게 타협하지 말 것’, ‘현상을 넘어선 본질에 대한 탐구를 할 것’ 그가 선배로서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바라는 점이다. 그는 “때로는 편한 방법을 취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타협’이라는 역주행을 선택해서는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변화한 것이 있다면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여성주의적 교육기관, 그가 이화에서 절대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 가치다. 그는 여성주의를 우리 학교 존립의 근거라고 꼽는다. 지금은 어느 대학에나 있는 ‘여성학’이라는 용어도 우리 학교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는 “수많은 인류의 문제 중 마지막까지 남아 해결해야 할 것이 바로 여성문제”라며 “이화가 여성문제 해결의 중심에 서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 엘리트주의’·‘약자’·‘지구환경’·‘생명’·‘평화’, 그가 제시한 우리 학교가 고민해야 할 키워드다. 그는 “이 키워드들은 모두 여성주의 관점에 입각한 것”이라며 “우리 학교가 여성주의 거점으로 항상 긴장하며 그  긴장감을 원동력으로 발전해 나가기 바란다”고 말했다.

퇴임한 후에는 가능한 공적인 일은 하지 않고 NGO, NPO적인 분야에서 남에게 봉사하는 일을 하려는 그에게 정년퇴임은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사회적 약자편에 서서 살아갈 것을 약속한 그는 현재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의 이사장으로 국내외 교육소외계층 아동 청소년들에게 장학지원을 하는 일을 맡고있다. 이를 위해 지난주에도 그는 연변, 제주도로 연이은 출장을 다녀왔다. 당분간도 그에게 여유로운 생활은 무리일 듯하지만 그의 표정 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인다.

“이제 법학공부는 안 하려고. 전공도서가 아닌 소설과 시를 읽으면서 지내야지” 그는 연구실을 정리하면서 전공도서들을 도서관과 제자 후배들에게 나눠줬다. 집에 있는 법학관련 도서들도 모두 학교 도서관으로 보냈다.

“이제부터 친구들도 만나고 그동안 못 읽었던 책도 다 읽으려고…”. 새 삶을 시작하는 그에게 ‘나 바쁘다’란 단어는 사용금지어다.

강애란 기자 rkddofks@ewhai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