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볼 일이다. 최대한 멀리, 할 수 있는 한 오래. 가끔은 돌아볼 일이다, 내가 흘러온 길과 흘러온 길들의 구석구석에 묻어있는 추억의 잔상들. 그리고 그 사이 사이 아직도 살아남아 숨 쉬고 있을 내 꿈의 조각들.

간혹 물어볼 일이다. 지금의 나에게 과거의 내가. 그래서 이젠 기쁘니, 아직 슬프니, 혹은 여전히 기쁘니, 라고. 지금의 나란 과거의 나와 과거의 내가 흘러온 길과 그 길을 흘러오며 누렸던 슬픔과 기쁨의 뒤범벅이므로, 가끔은 돌아볼 일이다. 그러면서 물어볼 일이다, 그래서 그 길과 그 위의 슬픔과 기쁨으로 이제 나는 무엇이 되었니, 라고.

프로스트는 갈림길에 서서 가지 않을 길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지만, 그리고 그런 오랜 시선은 이 길을 택한 나의 의지를 그만큼 강하게 하겠지만, 어차피 경험하지 않을 길에 대한 고민이 지금의 나를 얼마나 키울 수 있으랴. 그렇다면 차라리 돌아볼 일이다. 가지 않을 길에 대한 시선을 거두고, 이제는 흘러온 길에 대한 응시를 할 일이다. 그 시절 그 눈물은 지금 무엇이 되었는지, 한 때의 희망은 얼마만큼 남아있는지, 대체 나는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 그리고 지금의 나는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면 슬프기도 할 것이다. 과거의 나는 보이지 않고 뜻 없이 지나쳐온 길의 윤곽만이 희미하게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돌아보지 않는다고 그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지금 돌아보지 않음으로 그 슬픔은 더욱 커져 내일의 나는 돌아본 오늘의 나보다 더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슬픔은 슬픔으로 이겨내야 하는 것이지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그런 과정이 바로 성장 혹은 인생일 것이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 정호승 시 ‘수선화에게’ 중에서


때론 돌아보면 잊었던 꿈들이 나를 바라보기도 할 것이다. 아름다웠던 희망, 패기 넘치던 각오들도 기억날 것이다. 그러므로 돌아볼 일이다. 겁먹지 말고, 두려워만 말고. 기쁨 없었던 슬픔이 어디 있으며, 과거의 어느 한 시절엔가는 나만의 소중한 미래가 숨어 있지 않으랴. 따라서 돌아보고, 과거에 흘러온 길들을 거슬러 가볼 일이다. 과거의 나를 찾아 떠나볼 일이다. 단지 추억에 잠기기 위함이 아니라 과거의 용감했던 나를 만나 오늘의 나를 다지고 미래를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많은 사람들은 너를 만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네 눈물의 외줄기 길을 타고 떠나가리라.

강물은 흘러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너는 네 스스로 江을 이뤄 흘러가야만 한다.

- 최승자 시 ‘20년 후에, 芝에게’ 중에서


그 어느 길이든 다시 흘러오지 않는다. 가려하지 않아도 또 길은 내게 흘러올 것이다. 그렇게 불현듯 흘러온 길은 또 덧없이 그냥 흘러가 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준비할 일이다. 그저 시간이 나를 밟고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므로 돌아볼 일이다. 돌아봄으로써 잊었던 나를 다시 기억해내야 한다.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는 내 꿈의 조각들을 불러내고, 후, 하고 바람 불어넣어 더 크게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나 스스로 나의 꿈이 되어야 한다.


Now’s The Time Make It Right

Let Me See damn Hands Up High

요즘엔 내가 대세

        - 서인영 노래 ‘신데델라’ 중에서


가을이다. 다시 나를 추스를 일이다. 무엇인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면 이제 바로 세워놓아야 한다. 움츠리지 말고 내가 얼마나 손을 높이 들 수 있는지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돌아보아야 한다.

이젠 내가 대세, 라고 어디서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나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 겨울이 오고, 곧 다른 해가 올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돌아보아야 할 흘러온 길이 길어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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