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흘러간 세월 속 보물을 찾다
헌책방, 흘러간 세월 속 보물을 찾다
  • 이대학보
  • 승인 2008.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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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기 힘든 책, 음반 저렴하게 구입...생활문화 공간으로 사용돼
 

시큼털털한 오래된 책 먼지 냄새에 코끝이 찡해온다. 곧 재채기가 날 것만 같다. 천장까지 빼곡히 쌓인 책들 사이로 조심조심 지나다보면 드래곤볼 만화책·세계문학전집 같은 낯익은 책들이 눈에 띈다.  손 때가 묻어 더 정겨운 신촌지역 헌책방 ‘공씨책방’·‘정은서점’·‘아름다운 가게 헌 책방’을 찾았다.


△헌책·CD·LP판까지, 오래된 음반과 책이 있는 ‘공씨책방’

신촌역 1번 출구에서 곧장 걸어가면 흑염소 집·간판도 없는 구멍가게 사이에 헌책방 ‘공씨책방’이 있다. 가게 앞에는 오래된 LP판이 놓여 있다.

‘공씨책방’에는 헌책들뿐만 아니라 CD·LP판도 있다. 가게 한 쪽 구석에 들여놓은 큼지막한 전축이 생소하다. 처음 본 전축을 신기해하는 기자에게 주인 왕복균(55)씨는 LP판 하나를 꺼내 틀어준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이다. TV에서 보고 듣던 ‘난 알아요’를 LP판으로 들으니 귀에서 팡팡 터지는 음질이 새롭다. 

왕씨는 “음악 좋아하는 사람은 요즘도 LP판 많이 찾아”라고 말했다.

알고 보니 ‘공씨책방’은 헌책뿐만 아니라 음반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곳이다. 자우림 CD를 사러왔다는 서강대 김한솔(국문·06)씨는 “요즘 나오는 CD들은 재발매된 것이라 그 당시에 나온 CD를 찾고 싶어 왔다”며 “너바나 1집을 여기서 샀는데 보물을 찾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왕씨는 “우리 가게 오는 사람들은 찾던 책이나 구하기 힘든 책·CD·LP판 발견하는 기쁨에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인정(의류직물·07)씨는 “잡지가 많이 필요해 헌책방에 왔다”며 “가격도 저렴하고 구경하다보면 새 책 같은 것들도 있다”고 말했다. 기씨는 의외의 소득인 ‘스머프’ 만화책 한권을 들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39년 전통, 부녀의 정으로 새 단장한 ‘정은서점’

머리가 하얗게 센 주인아저씨. 낡은 명작 고전들. 한자가 가득 써진 고서적들. 이런 전형적인 헌책방이 생각난다면 39년 전통의 ‘정은 서점’을 찾아보자.

연대 정문 맞은편 좌측방향에서 10분 정도 거리 굴다리 근처에 위치한 ‘정은서점’. 서점에는 오래된 선풍기 한 대가 전부다. 초가을 땡볕에 지친 기자에겐 책장 귀퉁이에 걸린 부채도 감사할 따름이다. 부채하나 집어 들고 서점 안을 천천히 돌아본다.

책은 역사·국문학 등 분야별로 정리가 깔끔하다. 노끈으로 꼼꼼하게 동여매놓은 책들엔 친절하게도 “한글학회큰사전·전 6권 SET·60000원”이라는 쪽지가 큼직하게 붙어있다. 책장 사이사이 명언들도 보인다. 오래된 헌책방이 이렇게 바뀐 것은 주인 정재은(64)씨의 딸 정명희(25)씨 덕분이다.

정명희씨는 “헌책방 운영을 하려면 공부해야 하는 것이 굉장히 많다”고 한다. 정씨는 “옛날 책 찾는 손님이 있으면 한자뿐만 아니라 서기·단기도 알아야 하고 외국서적 찾아 주려면 중국어·일어도 조금씩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은씨는 “헌책방은 문화 사업이야 문화사업. 자부심이 대단하지”라며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그냥 버려질 수 있는 책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헌책방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다. 정재은씨는 “가끔 도서관·기관에서 헌책들을 폐지공장으로 보내버리는 경우가 있다”며 “책 정리할 때는 헌책방 통해서하는 게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 책과 나눔이 있는 문화 공간 ‘아름가운 가게 헌책방’  

공강 시간이나 집에 가는 길에는  밀리오레 근처 ‘뿌리와 새싹 아름다운 가게 헌책방’을 찾아보자.

신촌지구대 맞은편에서 골목길로 접어들면 초록색 나무 화살표가 보인다. 화살표를 따라 들어간 골목 끝에 책방이 있다. 깔끔하게 정리된 내부와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마치 북 카페에 온 듯하다. 내부 인테리어는 모두 폐자재와 버려진 가구를 활용했다.

아름다운 가게 한책방 신촌점 매니저 이현지씨는 “아름다운 가게 헌책방은 광화문에 두 곳, 파주·신촌에 한 곳씩 있다”며 “신촌점은 3년 정도 됐지만 외진 곳이라 잘 모른다”고 아쉬워했다.

아름다운 가게 헌책방은 헌책과 CD를 판매한다. 책과 음반은 모두 기증받는다. 수익금은 운영비를 제외하고 ‘수익 나눔’에 쓴다. ‘나눔 보따리’라는 이름으로 연말에 서대문구 독거노인·저소득층 가정을 방문해 라면·쌀·치약 등 생필품을 나눠준다.

아름다운 가게 헌책방은 ‘대안 문화 공간’으로 시작됐다. 이씨는 “문화적으로 재충전하고 마음도 쉴 수 있는 공간”이라며 “모임공간으로 대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화(392­6004)예약 하면 책방 한 구석을 빌릴 수 있다.

동국대 최은정(영화영상학부·07)씨는 “책 가격이 저렴해서 보물창고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이은지 기자 eunggi@ewhai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