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지도 내 '독도' 명칭 표기 활동, 정부대응에 주목할 것

일본 문무과학성이 7월14일(월) 중학교 사회 교과서 새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기술하기로 발표함에 따라 독도문제가 또다시 불거졌다. 여름 방학 내내 TV와 신문에는 연일 독도이야기가 나왔다. 인터넷 검색순위 상위권은 독도관련 검색어가 차지했다. 신용하 석좌교수는 지난여름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보냈다. 학부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독도연구에 28년이란 시간을 쏟아 부은 그는 독도문제가 나올 때마다 자신이 모아놓은 자료들이 유용하게 쓰이면 흐뭇하다. 그는 1996년부터 독도학회 회장을 지냈다. 독도와 일본의 독도영유권주장에 관한 이야기를 신용하 교수 연구실에서 나눠봤다.
△언제부터 독도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나?
서울대 사회학과 학부 시절 만난 스승의 영향이 크다. 서울대학교 이상백 교수(사회학전공)는 문제를 깊이 연구하려면 반드시 역사적 고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문환 교수(사회학전공)는 먼저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며 우리나라에 대해 연구해 볼 것을 권했다. 두 분의 조언을 받아들여 민족 문제를 역사적으로 고찰하려다 보니 19세기에 대해 공부하게 됐다. 19세기는 제국주의 시대에 일본이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알면서 일본영토로 편입하려고 했던 시기였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독도 연구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독도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관리실장으로 있었던 1980년부터다.  규장각에는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증명하는 지도와 자료들이 약간 있었다. 언론기관 등의 요청에 의해 나는 일본이 독도영유권을 주장할 때마다 묵혀 있던 자료들을 찾아 하나둘씩 공개해 일본의 논리를 반박했다. 그땐 독도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가 매우 적었다. 그러다 보니 독도 관련 자료와 해설의 요청이 많았다.
△독도연구를 하시면서 힘드셨던 점은?
독도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다.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여도 학문연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업적이 적다 보니 젊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분야다. 게다가 내가 연구를 시작했던 1980년대에는 정부가 독도관련 연구에 제약을 걸었다. 독도연구에 따른 제약 때문에 논문발표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연구비조차 보조받지 못했다. 이는 1965년 맺은 한ㆍ일 기본조약이후 독도에 대한 거론을 억압했다. 한번은 독도를 방문했는데 상륙허가를 내주지 않아 독도 앞바다 배 위에서 세미나를 하고 돌아온 적도 있다.
△일본이 독도에 집착하는 이유는?
독도를 소유함으로써 얻게 되는 동해에 대한 지배력 때문이다. 독도가 한국영토라는 사실 때문에 동해 어족자원ㆍ지하자원 등 많은 부분을 한국이 지배할 수 있다. 현재 조사된 매장량으로 보면 독도 아래 묻혀 있는 고체 천연가스는 우리나라가 30년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또한 독도는 동해 중앙에 있어 군사적 가치가 높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일본이 자꾸 독도를 탐내는 것이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근거는 무엇인가?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증명하는 자료는 단 한 점도 없다. 독도는 역사적으로 100% 한국 영토다. 독도영유에 관한 자료가 지도 포함 약 200점이 있는데 전부 한국영토임을 증명하고 있다. 1877년3월20일 일본 명치정부 최고 국가 기관인 태정관 문서에 ‘동해 가운데 있는 울릉도와 그 외 섬(독도)은 일본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땅’이란 내용이 있다. 이 문서는 일본이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인정하는 대표적인 증거자료다.
△제2차 한일어업협정이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에 근거라는 말이 있다.
1999년 발효된 제2차신한일어업협정에서는 독도가 중간수역에 들어가 있다. 신유엔해양법에 따라 자기 영토의 기점으로부터 200해리까지의 모든 자원에 대해 독점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할 수 있게 됐다. 당시 일본은 독도를 기점으로 잡았고 우리나라는 올릉도를 기점으로 잡았다.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 사이의 중간선을, 우리나라는 울릉도와 오키섬 중간선을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선으로 제안했다. 우리나라는 독도가 아닌 울릉도를 기점으로 잡은 것에 대해 독도가 무인도이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이 먼저 독도기점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에 우리나라가 울릉도 기점을 잡은 것은 일본의 로비에 의해 일본의 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양국 의견에 따라 울릉도ㆍ독도 중간선과 울릉도ㆍ오키섬 중간선을 양변으로 한 중간수역이 채택됐다. 일본은 이것으로 일본의 독도기점을 간접적으로 묵인했다며 세계지도에 독도이름을 지워달라는 국제활동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약 2만여 개의 인터넷사이트와 지도에서 독도표기가 ‘다케시마’ 또는 ‘리앙쿠르’라고 표기됐다.
△그렇다면 어업협정을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의 어업협정은 잘못된 것이니 수정해야 한다. 2006년2월 우리나라는 경제적 배타수역 기점을 울릉도에서 독도로 수정했지만 어업협정은 그대로다. 어업협정은 어느 한 나라가 종료를 통보하면 6개월 후에 소멸하도록 되어 있다. 정부는 이 어업협정이 종료됐음을 통보해야 한다. 그러나 이 협정이 일본에 유리하게 체결돼 있어 일본의 반대가 심할 것이다. 우리 정부는 경제적·정치적으로 일본의 압력을 받고 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압력을 극복할 만한 정부의 용기가 필요하다.
△일본은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져가려 한다.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지고 갈 이유는 없다. 모든 역사적 자료는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증명하고 있다. 국제법상으로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로 이미 공인돼있다. 1946년1월29일 연합국에 의해 한국영토로 판명돼 일본영토에서 제외되고 한국으로 반환됐다. 국제사회에서 주권은 국가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지고 가려 해도 우리나라 정부가 거절하면 안건이 성립되지 않는다.
△일본이 독도문제를 계속 이슈화시키는 것에 대응하지 말아야 하나?
무대응 해서는 안 된다. 약 10년 동안 우리나라는 공격적 외교를 하는 일본에 무대응 정책을 고수했다. 세계지도의 독도표기에 관해 일본에 많이 점령당했다.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할 필요는 없지만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 국제법은 무대응을 묵인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독도문제를 해결할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실효적 점유를 강화해야 한다. 현재 독도에 1가구가 거주하고 해양경찰대 1개 소대가 있다. 정부는 독도에 살고자 하는 많은 사람 중 약 10가구를 독도에 상주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상주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서도에 울릉도경찰서 지구대를 보내야 한다. 독도의 동도는 우리나라 동쪽 끝이므로 국방해병대가 지켜야한다. 영토 분쟁 시에는 ‘그곳에 어느 나라 사람이 살고 있나?’가 가장 중요하다. 독도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다면 논쟁은 그것으로 끝이다.
△독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일본이 바꿔놓은 세계지도의 ‘다케시마’ 또는 ‘리앙쿠르’ 표기를 독도로 복원하는 것이다. 각국의 지도부와 인터넷 사이트에 편지를 보내면서 활동하면 지명표기를 교정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일이 터지면 끓어올랐다가 한순간 식고 마는 한국정부에 각종 요구를 전달해야한다. 정부는 한일관계에 부담을 느껴 독도문제에 소홀해지곤 하는데 대학생들이 이에 대해 비판의 자세를 갖길 바란다.


강애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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