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0일, 전국을 공포에 떨게 한 안양 어린이 실종 · 살해 사건의 피의자 정씨가 구속되었다. 범죄전문가들은 정씨에게 사이코패스(반사회성 인격장애)라는 진단을 내렸고, 이와 동시에 국민들의 사이코패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영화 추격자의 모티프가 된 연쇄살인범 유영철 역시 사이코패스라는 진단을 받은 바 있다. 사이코패스는 1920년대에 독일 학자 슈나이더에 의해 처음 개발된 개념이다. 이들은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으면서 범죄를 저지르며, 타인의 아픔에도 공감하지 못한다. 게다가 자신의 불행을 타인과 사회의 탓으로 돌리는 특징을 갖고 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사이코패스가 범죄자에게만 국한되는 개념은 아니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이코패스가 위의 연쇄살인범들처럼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구속되지 않는 이상, 사회 곳곳에 숨어있다고 말한다. 사이코패스중 극소수만 교도소에 수감되어있으며, 다른 사이코패스들은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사이코패스 판정도구(PCL-R)를 개발한 로버트 D.헤어 박사에 의하면 실제로 뉴욕시의 10만명 정도가 사이코패스이며 인구 100명중 1명은 사이코패스라고 한다.


  사이코패스는 감정을 지배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일반인의 15%에 불과하며, 공격성을 억제하는 호르몬인 세라토닌의 분비가 적다. 즉 이들은 어느정도 유전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이코패스의 정신병질인 ‘사이코패시(psychopathy)’는 개인의 심리 내부에 깊이 잠재되어 있다가 사회 환경에 따라 발현될 수 있기 때문에 후천적인 환경이 유전적 특징보다 훨씬 중요하다. 앞서 언급한 유영철이나 안양 어린이 실종 · 살해사건의 피의자 정씨는 이처럼 불우한 환경속에 사이코패스 성향이 드러난 경우이다. 정씨의 이웃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말 수가 적긴 했지만 인사성 좋고 선량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선량한 사람’은 자신의 대여섯평짜리 지하 셋방으로 돌아가면 악마로 돌변한다. 그 곳에서 그는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비롯된 자격지심과 피해의식에 휩싸여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이웃들 앞에서 ‘선량한 사람’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흉악범인 정씨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양한 가면을 쓰고 산다는 것이다. 이 가면들은 보이지 않는 페르소나(Persona)를 뜻한다. ‘페르소나’는 라틴어로 가면이라는 뜻인데, 영어로 person(개인)의 어원이기도 하다. 현대사회의 개인은 사회속에서 다양한 지위를 갖고 살아간다. 실제로 나 역시 남자친구앞에서는 밝고 쾌활한 여자친구이지만 과외 학생들에게는 때때로 엄격한 모습의 선생님으로 임한다. 이처럼 개인이 각각의 상황에 걸맞는 다양한 페르소나를 갖는 것은 현대에서 슬기롭게 살아나가기 위한 필수적 요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건강하지 못한 페르소나는 개인의 인생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타인과 사회에 까지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일례로 전문가들은 2차 세계대전의 무법자 히틀러 역시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추정한다. 그는 권력을 잡게 되자, 폭력적인 페르소나속에 사이코패스 성향이 그대로 발현되어 무자비한 학살을 저질렀다. 이는 개인의 건강하지 못한 페르소나가 전인류적인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의 주위에 100명중 1명꼴로 사이코패스가 멀쩡하게 돌아다니고 있다고해서 무조건 두려워할 것만은 아니다. 그들은 지금은 그저 잠복기이기 때문이다. 잠복기인 그들의 사이코패스 성향이 영원히 발현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환경적 요인이 무척 중요하다. 사회에서는 소외 계층에 대한 무상상담, 심리치료, 사회복지사업 등을 보다 활성화시키는 등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방침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각급 학교에서는 인성검사를 통해 학생들의 심리를 파악한 뒤, 절대비밀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사이코패스 성향이 의심되는 학생들의 환경을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면 사이코패스 성향의 발현을 최대한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현대사회의 일원인 개인들이 다양하면서도 상황에 걸맞는 건강한 페르소나를 갖고 타인과의 관계를 영위하는 것이다. 항상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려 노력하고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갖는다면,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이들도 삐뚤어지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함께 더불어사는 안전한 사회는 개개인의 건강한 페르소나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우경진(철학·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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