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주 교수님(약학과)

파란 새싹이 돋아나고, 산수유가 노란 꽃봉우리를 터트리며 봄의 서곡을 연주하기 시작하면, 새내기들의 교실 찾는 소리, 입시라는 고개를 무사히 넘어온 사람들의 편안한 웃음소리로 또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다.

새내기 일학년 수업을 들어가면, 새환경에 긴장하면서도 잘 해보겠다는 똘망똘망한 눈망울에서 새로운 희망을 본다. 학생들의 4년 동안의 배움의 과정이 평생의 기초가 되어 그들이 살아갈 미래 세상의 모습이 될 것을 생각하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대학”이란 무엇인가? 학문을 습득하고, 이를 이용하여 새로운 학문을 생산하는 곳이다. 학문을 다른 말로는 지식 (Knowledge)이라 할 수 있고, 지식을 알게 되고, 이를 이용하여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 내는 곳이라 하겠다.

지식을 정의하자면 인간의 작품은 모두 지식이다. 문학작품, 역사, 경제이론, 수학공식과 자연현상을 이해하게 되는 다양한 과학적 사실과 개발된 기술, 음악, 무용, 미술을 포함한 모든 예술작품이 인류가 생산해 낸 지식이다. 이러한 지식의 생산은 현재까지도 왕성하게 생산되어 왔고, 앞으로 인류가 존재하는 한 무한히 생산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지식의 생산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사회는 변화하게 될 것이다. 역사를 살펴보아도 서구 르네상스시기와 조선 세종시절과 같이 지식생산이 왕성하였던 시기의 흥함과 이러한 지식생산의 중단에 따른 멸망을 자주 보게 된다.

우리 학생들에게 대학이란 이미 누군가가 생산해 놓은 지식을 알아가고, 이를 이용하여 지식을 생산하는 실습을 하는 시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고등학교의 반복되는 학습과 대학 시험을 보기 위한 수단으로 배우는 국어, 사회, 수학, 과학의 지식은 박제화 되어있어 지식에 감동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대학에서는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생산되어 우리가 배웠는가를 생각해 보고, 실질적으로 지식 생산에 활용하여 보면, 죽어 있던 지식이 ‘쨍’ 살아서 내게 다가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DNA가 이중 나선구조를 가지고 있다’라고 교과서에 간단하게 나온다. 그러나, 이를 발견할 당시에는 DNA 성질을 규명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실험을 하였고, 이를 이중나선구조로 정확하게 해석한 과학자들이 이 지식을 생산한 사람들로 기록되었으나, 이 과정에는 많은 지식생산자가 있어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과학만이 아니라, 조정래선생님이 ‘태백산맥’이란 소설을 써주시지 않았다면,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면, DMV 전화기를 만들어 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 버렸으리라 생각한다. 이 모든 과정이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생각보다는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열정에 버무려 총체적으로 작용하여 얻어진 지식 생산의 산물들이다.

이러한 지식 생산을 생각하여 보면, 지식에 대한 느낌이 바뀌어 배우고 익히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를 경험하는 대학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죽어 있는 점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지식이 살아서 나를 퍼떡이게 하는 그런 변화를 갖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한다. 우리가 어려서부터의 선행학습으로 지지부진 지식을 받아들이고 억지로 시험을 보며 지식을 죽여 왔다면, 대학에서는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여 저녁 집에 갈 때 이 세상 모든 것을 알아 보겠다는 결의로 내일 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발걸음이 되면 어떨까? 가수 콘서트에 가서 4시간을 스탠드로 뛰며 환호하여도 힘들 줄 모르고 재미있는 것처럼, 지적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그러한 열정이 절로 나고 즐거우면 얼마나 좋을까?

새로운 봄날 새 학기에 우리 다 같이 대학에서 점수와 같은 곁가지에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지식의 뿌리에 대하여 깊이 성찰하여, 신나는 지식의 보고를 들여다 보보고 더 근사한 지식을 생산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즐거움이 있었으면 하는 희망이다. 새싹이 터져 나오듯 힘이 있는 젊음으로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가득 채워 새로운 미래를 꿈꾸어 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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