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언어문화' 등 인문학 수요 반영한 전공 신설…경영학 · 자연과학 등 타 학문과의 연계도 활발히 진행중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나온 지 10년, 대학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인문학의 새 길을 모색해왔다. 트렌드에 따라 학생의 수요가 늘어난 과목을 신설해 인문학의 범위를 넓힌 ‘연계전공’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또 자연과학·경영학 등 타 학문과 인문학 사이에 학제 간 융합을 시도하기도 했다.

 

△인문학, 트렌드를 반영하다
올해 인문대에는 ‘일본언어문화’ 연계전공이 신설됐다. 일본어와 일본문화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꾸준히 늘어 수요를 충족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본일본어 과목의 경우 매년 증설됐으며 현재 29개 분반이 개설돼 있다. 일본대학과의 교환학생 또한 증가했다.


일본언어문화 개설을 제안한 송영빈 교수(일본어과)는 일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유에 대해 지나친 세계화·국제화에 대한 반향을 꼽았다. 이로 인해 인문학에서 동아사아에 대한 수요와 관심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이제 서구 문명의 일방적인 수입에서 벗어나 우리가 창조적으로 인류 문화에 공헌할 수 있는 장점을 생각해야 할 때”라며 “이를 위해 우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일본과 중국을 탐구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언어문화 외에 인문대학에 소속된 연계전공은 동아시아학·미국학·미술사학·전문영어 총 5개이다. 이중 가장 인기를 끄는 과목은 미술사학으로 100명 안팎의 학생들이 매년 복수전공을 신청·승인받고 있다. 부전공으로 이수하는 학생을 포함하면 200명 가량의 학생들이 미술사학을 이수하고 있는 셈이다.


부전공으로 미술사학을 이수하고 있는 이새미(섬유예술·04)씨는 큐레이터 쪽에 관심이 있다. 학예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대학원도 미술사학으로 진학할 예정이다. 박물관 또는 미술관에서 유물을 관리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는 꾸준히 수요가 늘고 있는 추세다.


이번 학기 ‘여성과 예술’을 수강하고 있는 조보경(조소·04)씨는 실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미술사학을 복수전공 하고 있다. “상징이라거나 하는 세밀한 부분에 대해 배우면서 의미 등을 생각하게 됐다”는 조씨는 다른 작품의 관점을 참고할 수 있어서 좋다고 덧붙였다.


홍석표 인문과학부장은 인문학의 위기에 대응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으로서 연계전공 등은 긍정적인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홍 학부장은 “관련된 교과를 묶어서 새로운 전공을 창설함으로써 인문학의 영역이 확장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경영학과 인문학의 만남
CEO들 사이에 인문학 바람이 불고 있다. 작년 제 1기를 성황리에 마친 서울대 인문학 최고지도자 과정(AFP)은 현재 제 2기를 운영 중이다. AFP 1기를 수강했던 김인철 백경호 우리CS자산운용 사장은 2기 프로그램 추천의 글을 통해 “이 과정을 들으며 창조의 원천은 인문학이란 확신이 생겼다”며 직원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과 예술교육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학기에는 김기열 KTF 부사장, 김낙회 제일기획 사장, 김명곤 SK에너지 사장 등 기업 CEO를 비롯해 사회 각계 분야의 지도자 45명이 이 과정을 수강하고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연사들은 황동규 명예교수 등 서울대 인문대 교수와 우리 학교 류철균 교수(디지털미디어학부) 등 다방면에서 활동 중인 외부인사로 구성됐다. 이들은 ‘칸트의 이성 비판과 현대인의 이성’·‘창조 경영과 인문학적 상상력’등 역사·예술·철학을 아우르는 다양한 주제로 강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4월1일(화) 강연을 맡은 우리 학교 정재서 교수(중어중문학과)는 ‘신화로 보는 한국과 중국’을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다. 강연은 현대 문화 산업에서 신화적 상상력의 중요성과 활용 가능성에 대한 내용을 진행된다.
정 교수는 최근 인문학과 타 전공이 융합하는 경향에 대해 “인문학은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며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 학문”이라며 “경제나 경영은 물론 과학 등의 분야에서까지도 인문학적인 기초를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 인문학적 소양을 쌓음으로써 더욱 수준 높은 경제나 경영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정교수는 덧붙였다.

 

△인문학, 자연과학을 만나다
우리 학교는 작년 3월부터 대학원에 에코과학부 과정을 신설했다. 에코과학은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기후 변화 등 인간을 위협하는 현재의 환경문제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한 학문이다. 이를 위해 생태학을 중심으로 한 자연과학·윤리학·정책학 등 학문 간의 융합을 추구하고 있다.


개설된 과목 중 ‘인간환경론’은 물·에너지·식량 부족 등 환경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과목이다. 생태학의 특성상 수질공학 등의 공학을 연상하기 쉽지만 수업에서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직접 다룬다. 최근 진행된 수업의 경우 대외 경제정책 연구원을 초청해 석유가 고갈되고 있는 원인에 대한 강연을 들었다. 강연을 듣고 학생들은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에 대해 토론했다.


수업 외에도 학생들은 학제 간 융합 모임을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다. 통섭원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권은비(에코과학부·석사5학기)씨는 에코과학부가 아직 시작단계라고 말한다. 대학원이 신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학제 간 융합을 주제로 한 수업이 개설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권씨는 모임을 통해 학제 간 융합을 계속하고 있다. 모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정재서 교수의 ‘동양신화 속에 나오는 동물들’에 관한 강연이었다. 권씨는 “신화 속에 등장하는 동물에 비추어 당시의 자연관 생태관을 알아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함은혜(에코과학부·석사3학기)씨는 학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그가 에코과학부를 선택한 것은 야생동물의 보존 등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서이다. 함씨는 “동물의 행동생태에 대해 더 많이 알면 보존 대책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인문학에서 미래를 보다’
충남대 인문대학·인문과학연구소가 주관하는 ‘대전인문학포럼’에서 25일(화) 우리 학교 최재천 에코과학부 석좌교수가 첫 강연을 펼쳤다. 충남대에서는 이 날부터 총 6회에 걸쳐 저명인사를 초청, ‘인문학에서 미래를 보다’란 주제로 릴레이강연을 펼친다.


최재천 교수의 강연은 ‘통섭-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범학문적 소통’을 주제로 진행됐다. 강연에서 최재천 교수는 2020년의 트렌드는 기후변화·고령화·여성·혼화(混和)·창의와 혁신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기후변화센터의 출범과 출산률 감소·평균수명 증가 등이 이 현상을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물을 깊게 파려면 넓게 파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정약용·박지원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학자들은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활동했다. “진리의 행보는 우리가 애써 만들어놓은 경계를 존중해주지 않습니다” 최 교수는 미래의 문제를 능동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통섭, 즉 학문 간의 융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로 잇는 최 교수는 학부에서도 강의를 하고 있다. 그가 학부에서 강의하는 과목은 ‘환경과 인간’으로 생태학에 기본을 두고 다른 분야들과 접점을 찾아가는 수업이다. 강의는 그와 학생들이 낸 아이디어로 ‘위원회’를 조직, 자료를 수집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난 학기에는 ‘교통대책위원회’ 등이 만들어졌는데, 학기말 발표회 때 직접 대중교통 시민단체 회장이 찾아오기도 했다.


“지금 이야기 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문제 또한 결국은 정치·경제 외에 토목공학·자연생태·시민사회학 등이 다 얽혀있는 문제입니다” 최 교수는 21세기에 우리가 해야 하는 것들은 모두 학제간의 융합이 필요하며, 다양한 전공의 사람들이 다각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20세기 후반부는 과학의 시대였으나 21세기에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함께 공동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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