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럽에서 한국인 입국심사가 까다로워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이 한국 여권을 위조해 들어가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취하게 된 불가피한 조치라고 한다. 이유야 어쨌든 한국인에 대한 입국심사가 까다로워진다는 것은 그리 흔쾌한 일이 아니다.


본래 passport는 외국인이 다른 나라의 항구(port)를 지날(pass) 때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요청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최초의 여권은 요즘처럼 수첩의 형태가 아니라 본국 지배자의 문장(seal)이 들어가 있는 반지였다.


예를 들어,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왕의 이름을 상형문자로 새긴 둥근 물건을 사신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외국을 방문하는 고위 관리들의 경우였고, 일반인들은 그런 것 없이도 왕래할 수 있었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까지는 여권이 외국 여행의 필수품이 아니었다. 그러나 1914년에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전쟁이 일어나자 아군인지 적군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여권은 외국으로 나갈 때 반드시 지참하게 되었으며, 같은 해에 사진도 붙이고 영어 번역본도 첨부하게 되었다.


1918년 전쟁이 종료된 후에도 여권은 필수로 남게 되었다. 1921년 국제 연맹은 동일한 형태의 여권을 제안하였고,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동의하였다. 옛날 반지가 32장의 수첩이 된 것이다!


한편, 여권에 첨부하는 비자(visa)의 어원은 라틴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보다’라는 뜻의 라틴어 동사 비데레(videre)의 여성형 과거분사가 바로 비자(visa)다. 중세 라틴어에서는 카르타 비자(charta visa), 즉 ‘이미 보여진 종이’ 또는 ‘증명된 종이’라는 의미였는데, 불어는 여기에서 비자만을 택해 그런 의미로 사용하였고 이것이 영어로 들어가, “여권 위에 하는 공식적인 서명 또는 배서”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장한업 교수 (불어불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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