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 전 담당과목 게시판에 영어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글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공감한다는 댓글이 많이 달렸음은 물론이다. 영어강의를 전혀 못 알아들어서 나중에 혼자 책을 보며 공부한다는 학생도 있었다. 최근 학보에는 영어강의로 겪는 고충에 대한 기사가 실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영어강의 확대정책은 계속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순히 우리학교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얼마 전만 해도 인수위의 영어몰입교육 정책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새 대통령도 후보 시절에 국어나 국사를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로 교육하겠다고 공약했을 정도이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현재는 먼 훗날의 계획일 뿐이라고 한 발 물러선 상태지만 이 말을 그대로 믿는 학부모는 많지 않다.


그런데 도대체 왜 온 국민이 이토록 영어에 매달려야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흔히 세계화의 시대를 맞이하여 앞으로 영어가 갈수록 중요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건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1%의 국민은 영어를 모국어처럼 잘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온 국민에게 몰아치고 있는 작금의 영어열풍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고은 선생은 영어를 잘해서 노벨상 후보가 되었을까? 전도연은? 김연아는? 자신의 직분을 다하며 대한민국 안에서 살아갈 수많은 사람들이 왜 영어 때문에 열등감에 시달려야 하는가? 나는 지금까지 이 소박한 의문에 대해 설득력 있는 답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영어 스트레스를 호소한 게시판의 학생에게 자신의 분야에서 진짜 실력을 길러 진정한 전문가가 되라고 조언하였다. 영어는 그 과정에서 분야에 따라 도움 되는 정도가 다른 보조도구일 뿐 능력 판단의 핵심 기준이 될 수 없다. 미국에서는 길거리의 각설이들도 아주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


2. 요새 세간의 화제는 아마도 단연 한반도 대운하일 것이다. 이 사업은 찬반이 극단으로 갈려 있다. 찬성론자들은 오랫동안의 연구 결과 운하 건설이 경제, 관광, 환경 등 다목적으로 매우 가치 있는 일이며 국운융성의 대역사라고 하는 반면 반대론자들은 오히려 모든 면에서 극심한 부정적 효과가 예상된다며 결사반대하고 있다.


운하를 핵심공약으로 내걸었던 새 정부는 총선을 앞두고 부정적 여론 때문인지 잠시 확전을 피하는 눈치이다. 하지만 언론 보도에 의하면 선거 후에 바로 강력히 추진할 것이며 이미 세부 계획도 서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야당이나 환경단체의 반발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수천 명이나 되는 교수들이 운하 반대 모임을 만들었다는 소식은 매우 놀라웠다. 군부 독재 시기 이후 처음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나는 이 모임의 회원이 아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찬성론자들의 반응을 보고 소박한 의문이 생긴다. 운하의 전도사로 불리는 정부의 인사들은 대운하 반대 모임의 교수들은 전문가가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정치적으로 다른 목적이 있어서 그렇다고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반대 모임의 교수들 중에는 전문가가 넘쳐났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그 수천 명의 교수들이 얻을 정치적 이익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왜 그런 반응을 보였을까?


나는 올 2월 고사리에서 열린 새내기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을 때 비로소 대운하에 대해 실감할 수 있었다. 대운하는 문경새재에 터널을 뚫는 것이 가장 큰 공사라 한다. 지금 보고 있는 고사리의 풍광과 고즈넉한 분위기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문경새재를 넘으면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3. 교육은 흔히 백 년의 미래를 결정하는 막중한 사업이라고 한다. 국토의 근간을 통째로 바꾸는 일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수만 년 뒤의 우리 후손들도 바뀐 국토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반도 대운하의 모델로 흔히 거론되는 독일의 마인-도나우 운하는 오랜 사전 논의는 물론이고 건설 기간만 30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독일 교통부 장관이 “바벨탑 이후 가장 무식한 사업”이라고 개탄했을 정도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한국인의 ‘빨리빨리’는 유명하다. 이것이 때로는 기적적인 성과를 이뤄내기도 하지만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의 붕괴 같은 참사를 낳기도 한다. 국민과 국토의 미래를 결정할 영어교육과 운하사업은 결코 ‘빨리빨리’로 밀어붙여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김찬주 교수(물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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