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추격자' 제작한 김수진(독문 · 89년졸) 비단길 대표 인터뷰
“대학 시절 미국 영화사에다가 팩스로 지원서를 천통 보냈어. 일하고 싶다고. 그랬더니 한 영화사에서 나를 부르더라고. 얼른 가방 싸매고 날라갔지”
올해 상반기 최고의 흥행 영화 ‘추격자’는 500만 관객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제안이 들어올 정도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 작품이다. 훌륭한 영화 작품 뒤에는 탁월한 리더가 있는 법. 그는 바로 영화제작자 김수진(독문·89년졸)비단길 대표다. 영화에 푹 빠진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사무실 근처 잠원동 C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의 뚝심 덕분에 영화 ‘추격자’ 성공하다
“성공 비결? 운이 좋았어. 물론 정말 열심히 일했지” 좋은 감독과 뛰어난 연기자를 만난 것이 ‘운’이었다면 좋은 소스를 가지고 멋지게 요리할 수 있었던 건 그의 피나는 ‘노력’덕분이었다. “나홍진 감독이 시나리오를 가져왔는데 단숨에 읽히더라고. 바로 선택했지” 망설임 없는 결정 후 2년 반 동안 그는 감독과 논쟁을 벌였다. “이리 뜯어 고치고, 저리 뜯어 고치고…씬(scene) 하나하나 내가 다 터치했어. 고맙게도 감독이 내 의견을 거의 다 따라줬어”
배우 캐스팅에도 충돌이 있었다. 투자자는 인기 스타를 쓰자고 제안했지만 그는 연기 잘하는 배우만을 고집했다. “내 영화에는 대스타 필요 없어. 그 영화에 딱 어울릴만한 ‘적격 캐스팅’이 내 원칙이야” 김윤석은 연기를 굉장히 잘하는 배우였고, 하정우는 순한 얼굴로 살인범 연기를 하면 효과가 극대화 될 것 같았다.
김대표는 이 영화를 통해 사회 현실을 반영하고 싶었다. “요즘 무섭잖아. 연쇄 살인 사건이니, 아동 성추행이니…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경각심을 가졌으면 좋겠어” 개미수퍼 아줌마가 ‘영민’에게 흉기를 건네주는 장면을 보고 관객들의 입에선 안타까운 탄식이 흘러나온다. “그 장면이 하이라이트지. 시민들의 안일한 태도를 꼬집어 주고 싶었어” 그렇지만, 단순히 잔인한 영화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이건 공포영화가 아니잖아? 단지 한 남자가 또 다른 남자를 잡으러 밤새 뛰어다니는 장면을 통해 한국 사회의 현실을 비춰주고 싶었던거야” 수위 조절 때문에 1년 동안 고생했다니 그가 얼마나 고민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영화를 배급하기 직전까지 그를 괴롭혔던 것은 제목. “난 무조건 ‘추격자’라고 했어. 배급사에서 ‘앞뒤에다가 수식어 좀 붙이자, 촌스럽다’고 했지만 난 귀를 막아버렸어” 결국 그의 고집대로 제목은 ‘추격자’가 됐다.
△영화는 뗄 수 없는 내 운명
어린 시절, 그는 가족끼리 TV앞에 앉아 ‘주말의 영화’를 보는 시간이 가장 재밌었다.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해방감과 행복을 느꼈어. 이때부터 나는 아마 평생 영화랑 인연을 같이 할 운명이었나봐” 고3때는 자습시간에 도망 나와 매일 영화를 보러 다녔다. 영화에 빠진 덕분에 수험생 시절 등수가 40등이나 떨어졌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너는 때릴 가치도 없다’며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나 완전 충격 받았어. 그래서 두 달 동안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다행히 ‘이화여대’에 입학했지”
그는 대학교 2학년 때 선배들과 함께 영화패 동아리 ‘누에’를 창시했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은 것이지만 난 하고 싶었어. 재미있을 것 같았거든” 그는 화끈하게 일을 벌렸다. 동아리에서 처음 만든 영화의 제목은 ‘시발(始發)’이었다. 유리 안에 갇혀있는 한 여성의 탈출이 주제였다. “우리 학교가 여성을 위한 학교잖아. 이대의 위상을 높여주고 싶다는 애교심도 한몫했지” 1987년에는 개교 100주년 기념으로 최초의 ‘여성영화제’를 개최했다. “여성과 관련된 영화를 모두 이리저리 긁어모았지. 친구들끼리 논문을 쓰고 포럼도 개최하고…어찌나 열정이 넘쳤던지…”
김씨는 다큐멘터리 영화에도 도전했다. “가장 밑바닥의 여성은 누구인지 생각해봤어. ‘창녀’더라고” 그는 무조건 뛰어들었다. 그들과 같이 살면서, 취재하면서 그는 매일 같이 펑펑 울었다. “어떻게 저렇게 극단적인 삶이 있을까…정말 나는 감사하다는 생각밖에 안들었어” 그러나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어쩜 그렇게 못 만들었는지, 보는 내내 부끄러웠다니깐” 이때 그는 감독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제작자’를 꿈꾸며 충무로에 취직했고, 23살 어린 나이에 첫 회사를 차렸다.
그는 벌써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이다. 역시 사회참여적 영화로, 주식으로 사기를 치는 내용이다. 제목은 ‘작전’. “이번에도 연기 잘하는 배우만 쓸거야. 관객들도 연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거든”
그는 탁자 위에 자기 손을 올려놓았다. 손가락에는 이화 졸업 반지를 끼고 있었다. “나 이거 항상 끼고 다녀. 일부러 끼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끼게 된다니까?” 그는 ‘이화’가 여성의 주체성을 키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말했다.
“무엇이든지 스스로 해봐야해. 도전 정신과 노력만 있으면 다 할 수 있어” 김씨의 소망은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 여성인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다. 여성 주체 의식이 살아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영화 속 추격자처럼 힘차게 달리는 그의 숨 가쁜 행보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