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변영주(법학 · 89년 졸) 인터뷰

변영주(법학·89년졸) 감독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처음 연락이 닿았을 때 그는 “딱히 할 말이 없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포기하지 않고 한번 더 연락을 취했을 땐 촬영 스케줄로 지방에 있다고 했다. 기다리겠다고 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서울에 올라왔다는 연락이 왔다. 어렵사리 약속을 잡고 남부터미널역 근처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에 응해줘 고맙다는 인사를 했더니 ‘변영주다운’ 답변이 돌아왔다. “왜 이렇게 자주 전화해? 또 전화 올까봐 내가 그냥 한다고 했어.”


그는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딱히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다. 대학은 물론 전공도 점수에 맞춰서 선택했다. “점수 맞춰서 들어왔는데 공부가 재밌었을 리가 있나. 1학년 때부터 그저 학생운동이나 했지. 겁이 많아서 제대로는 못했고 맨날 남의 뒤에 숨어 다녔어.” 졸업을 앞둔 4학년이 됐지만 그의 학점은 1.98. “취업은 커녕 졸업도 힘들겠더라고. ‘어차피 난 망했구나’라는 생각에 그럼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뭘까 생각해봤지.” 그 때 떠오른 것이 어릴 적부터 즐겨봤던 영화였다. 그는 중앙대 대학원 영화과에 지원했고, 다행히 학부 성적은 반영되지 않았기에 그는 합격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주식도 바닥을 쳐야 반등하듯 그 역시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다시 기회의 끈을 잡은 셈이었다.


대부분의 3·40대들에게 대학시절은 돌아가고 싶은 ‘청춘’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변영주에게 있어 대학시절은 ‘추호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다. “나의 20대는 하루만 생각해도 부끄러운 나날들이야. 난 대학시절로 돌아가봤자 구체적인 목표도 없이 비겁하게 살거라고 생각해. 20대 때 못해봐서 아쉬운 것도 없고.” 변영주는 지난 20년을 ‘스스로 투쟁해 온 시기’라고 표현했다. “나는 지난 20년간 스스로 투쟁해왔다고 생각해. 나의 자유·결정권·독립성 등을 위해서.”


그래도 기억에 남는 순간들은 있다. 장필화 교수의 여성학 연구 수업에서 변영주는 친구들과 함께 레포트 대신 짧은 영화 한편을 만들어 제출했다. “양성 교육을 받는 아이에 관한 영화였어. 완성도로 따지면 굉장히 후져. 그래도 만드는 과정에서 정말 재밌더라고.” 그는 장필화 교수 덕분에 여성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장필화 선생님은 내게 있어 엄마 같은 분이야. 다른 수업은 몰라도 여성학 수업은 재밌었어.” 영화를 직접 만들어 제출했기에 A+을 기대했지만 정작 B를 받았다. “나 졸업 때문에 A+필요했는데 말야. 참 너무하셨어. 하하”


전 총장이었던 윤후정·신인령 교수와도 인연이 깊었다. 윤후정 교수는 학문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져 그가 진심으로 존경하던 교수였다. “그 당시 윤후정 선생님이 학과장이셨어. 내가 법학과 역사에서 공부 제일 못해서 아마 갑갑하셨을거야.” 담당 교수였던 신인  교수에 대한 애정은 특히 깊었다. 변영주는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경찰에게 잡혔다. 경찰은 집으로 전화했고, 놀란 부모님이 담당 교수인 신인령 교수를 찾아왔었다. “그 때 신인령 선생님이 부모님께 이렇게 말씀하셨어. 요즘 애들이 위험해서 마약도 하고, 임신도 한다며 그에 비해 학생운동은 건전한 활동이라고.”


발레교습소 이후 긴 휴식기를 가졌던 변영주 감독은 지금 새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일본 작가 미야베 미유끼의 소설 ‘화차’를 원작으로 한 영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소설은 자신의 신분으로는 살 수 없게 된 여자가 다른 여자를 죽이고, 그 여자의 신분으로 살아가다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게 돼버린 이야기다. 그는 “개인파산, 신용불량이라는 소재로 쓰여진 소설을 다른 식으로 풀어보려 한다”고 말했다. 빠르면 내년 초쯤 개봉할 계획이다.


“난 영화를 하면서부터 진정한 공부를 했다고 생각해. 노동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오히려 내가 학습 받았고, 낮은 목소리를 찍으면서 할머니들을 통해 내가 여성학을 배우게 됐지.” 영화를 찍으면서 그는 부지런해졌고, 즐거워했고, 조금씩 성장했다. 그래서일까. 한국 영화계의 현실이 밝지만은 않지만 그는 영화감독이 된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할 시간이 어딨어. 후회는 이미 다 해서 지겨워질 때 하는 거지. 난 영화는 계속 할거야.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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