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정보통신·04)씨는 지난 학기 평점이 4.1이 넘었다. 그는 성적을 확인한 뒤 장학금을 받을 생각에 기뻤다. 그러나 그가 받은 장학금은 500만원에 가까운 등록금 중 40만원 뿐이었다. 그는 “등록금의 1/4은 감면받을 줄 알았다”며 “장학금 내역을 확인하고 내심 서운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학점이 동반적으로 상승하는 ‘학점인플레이션’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평점 4.3만점에 4.0이 넘어도 최우수장학금(등록금 1/2 면제)·우수1장학금(등록금 1/4 면제)을 받지 못할 정도로 장학금 커트라인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평점이 3.75 이상인 학생들에게 지급하는 우수장학금을 받은 학생 수는 2년 새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05학년도 우수2장학생은 1천932명이었지만 작년 3천211명으로 1천279명(66.2%) 증가했다. 학생복지센터는 “우수2장학금으로 지급되는 예산이 2005학년도 약 5억8천만원에서 지난해 약 9억6천만원으로 상당히 늘어났다”고 했다.


최우등·우등 졸업생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우리 학교는 4.3만점에 평점 4.0이상인 학생을 최우등 졸업생으로, 3.75 이상인 학생을 우등 졸업생으로 시상하고 있다.


2005학년도와 비교할 때 총 졸업생 수는 69명이 줄어들었지만 최우등 졸업생은 35명(2학기 기준)에서 지난 학기 69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우등 졸업생 역시 2005학년도 2학기 157명에서 지난 학기 211명으로 50명 이상 늘었다.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은 비단 우리 학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연세대 노유철(경제·04)씨는 “재수강 제도가 제한되고, 이중전공 이수에 학점이 중요해지면서 학생들이 학점에 더욱 신경을 쓴다”며 “특히 고학년 중에는 평점 4.0이 넘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고려대 이종훈(신소재공학부·04)씨는 “해가 갈수록 학생들이 학점 관리를 열심히 한다”며 “전공별로 다르긴 하지만 일부 학생 중에는 4.5에 가까운 학점을 받아도 전액 장학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홍진희(환경재료공학부·06)씨는 “전공 과목의 경우 교수님들이 교양 과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학점을 후하게 주신다”며 “2학년이 돼 전공을 결정한 뒤에는 많은 학생들의 학점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학생 및 전문가들은 ‘학점인플레이션’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 취업난을 꼽는다. 권영지(언론·05)씨는 “취업난의 영향으로 학생들이 저학년 때부터 학점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취업전문포털사이트 인쿠르트 강정화 연구원은 “학생들은 취업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학점 등 모든 분야에서 과거보다 열심히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업 측에서는 학점인플레이션 현상으로 학점의 변별력이 떨어졌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기업들도 채용 과정에서의 변별력을 높이려고 한다. 일부 기업은 전공 학점 기재, 자체 인력채용 시스템 개발 등 다양한 평가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포스코 건설 인사팀 박혜연 대리는 “학점이 놀라울 정도로 좋은 학생들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전반적인 학점 평균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학점을 높이고자 교양 등 쉬운 과목을 골라 듣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성적표를 받아 전공 과목의 학점 등을 꼼꼼히 검토한다”고 말했다.


삼성은 채용 과정에서 변별력을 높이고자 전체 평점이 아닌 과목별 학점을 기재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이수영 연구원은 “기업은 신입 사원을 채용할 때 마땅히 볼만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학점, 공인 영어 점수로 평가할 수 밖에 없다”며 “그러나 변별력이 없다는 지적이 계속돼 정부 차원에서 기초직업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제도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성적 평가 과정이 좀 더 철저해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최선열 교수(언론홍보영상학부)는 “교육부의 취업률 공개 정책에 따라 많은 대학에서는 학생들 평가 방식을 취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재수강·학점포기 제도 등을 엄격하게 제한해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을 방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경원 기자 if1026@ewhain.net


△우수 2장학생: 직전 학기 15학점 이상 취득하고 과목 낙제 없이 평점 평균 3.75 이상인 학생. 올해부터는 한 학기 동안 등록금에서 40만원을 면제 받는다. 특대생·최우수·우수1·기탁·교외 장학금 등을 받은 학생은 제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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