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의 함성과 펄럭이는 태극무늬로 서울 하늘을 가득 메웠던 1988년 9월 17일, ‘88 올림픽’ 개막식 날. 창공을 물들인 형형색색의 풍선과 함께 우리가 기억 속에서 날려버린 것이 있다. 당시 벅찬 감동으로 올림픽을 지켜봤던 사람들은 무엇이 부족했느냐며 고개를 기우뚱하겠다. 문제는 성화대에 있었다. 경기장의 설계가 끝날 무렵에야 잊고 있던 성화대 설치가 급하게 이뤄졌다. 경기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올림픽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핵심 역할을 하는 성화. 뒤늦게야 축구 골대 뒤쪽에 성화대를 마련했다는 일화 속에는 한국인의 자화상이 씁쓸하리만큼 여과 없이 담겨 있다.


급속한 경제 발전 속에서 형성된 ‘빨리빨리’ 문화가 내실 있는 준비의 중요성을 무색하게 한다. 경기장 설계에서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고 뻔지르르한 형상을 만들어 놓기에 혈안이 올랐었던 그때.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성장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일까. 매번 반복되는 참담한 사건들로부터 준비되지 않은 한국 사회는 오늘도 열병을 앓고 있다.


지난 2월 국보 1호인 숭례문 화재를 바라보며 2005년도에 발생한 낙산사 화재를 떠올린 이들이 있을 것이다. 당시 목조문화재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피해를 키웠던 소방 당국의 초기 진화 문제가 숭례문 화재에서 그대로 반복됐다. 이번 우예슬·이혜진 양의 살해 사건도 숭례문 화재와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2004년 1월 경기도 부천에서는 실종된 초등학생 2명이 알몸상태로 마을 야산 부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불과 한 달 후, 3개월 전 실종된 중학교 여학생이 경기도 포천의 한 배수관 안에서 숨져 있었다. 지난해 아동 유괴사건은 12건·아동 성폭행 사건은 1천81건이나 발생했다.


이러한 사건들이 미디어를 통해 크게 보도될 때마다 정부 당국과 경찰청은 국민의 성화를 잠재우기 위한 대안과 수사 과정을 보여주기에 급급하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경찰의 수사 작업은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사건이 발생한 4일 후에야 수사본부를 설치했고 일주일 뒤에 공개수사를 시작했다. 피의자를 수사 대상에 올려두고도 집중 수사 대상에서는 제외했다.


내년부터 우리나라는 미국에서 밴치마킹 한 앰버경고(Amber Alert) 프로그램을 시행할 예정이다. 앰버경고는 아동의 실종 시 신속한 제보를 받도록 실종된 어린이 사진을 공중파 방송 3사에 보내는 제도다. 또한 경찰청은 경찰청 소속의 ‘실종 전담 수사팀’을 신설한다는 등의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성범죄자의 신상을 등록하고 관리하는 매건법·쇼핑몰 등에서 아이를 잃은 부모의 신고가 들어오면 모든 출입문들 닫고 안전 요원이 아동을 찾도록 하는 코드 아담 등 법적인 제도가 이뤄지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영국과 호주 등에서는 어린이 안전을 위한 사전 교육 역시 이뤄지고 있다. 사범대학에서는 어린이 안전 과목을 이수해야만 교사 자격을 부여하는 등 사건이 발생 전의 예방에 힘쓰고 있다.


당장 내일 어린이 유괴 사건이 일어나도 준비되지 않은 대한민국은 똑같이 헛다리 수사를 짚으며 시신을 발견할 것이다. 사건 발생 이후의 체계적인 대처 방안을 마련해 조속한 해결과 더불어 같은 문제의 반복은 없어야 하겠다. 혜진이와 예슬이 죽음을 둘러싼 기사가 홍수를 이루고 이런저런 당부와 약속들이 이어지는 요즘. 떠나보내는 그들을 위한 진심 어린 위로는 문제의 핵심을 찾아 준비하는 변화된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상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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