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20년의 스위스 제네바 생활까지 총30여년의 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지 8년이 되어갑니다. 이러한 저의 눈에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외국의 입장에서 조망하는 버릇이 있어 한국의 정서와는 동 떨어지는 평가가 있긴 하지만, 저는 저와 같은 제 3지대에서의 관찰이 오히려 객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몇 가지 한국적 현상은 상당히 심각합니다. 몇몇 분야에서는 초일류를 자랑하는 우리이지만 어떤 경우는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방해하는 심각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후진국적인 병폐 중의 하나가 상대방의 얘기를 경청하는 기본적인 자세가 결여된 것 입니다. 민주주의의 참 실현은 입장과 의견이 다른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민주주의가 잘 정착된 나라에서는 소위 보수와 진보세력(상대적인 개념)의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합니다.


비행기는 2개의 날개를 이용해서 비상합니다. 독수리도 양 날개를 가지고 공중으로 날아갑니다. 분명히 한국에는 합리적인 보수의 세력이 많이 있습니다. 소위 소득 2만 불 이상의 나라에서는 중산층이 많이 생겨나게 되고 이들은 보수화 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사회학에서도 증명된바 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먹어질수록 보수화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상징적으로 한사람의 가슴에도 진보와 보수의 생각이 공존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합리적인 보수인 다수의 목소리가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소수의 극렬한 고집불통의 완고보수가 이들의 목소리를 가로막거나 대치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에서는 다수의 이성적인 진보세력이 있습니다. 개혁을 외치는 목소리 그리고 젊은 나이의 신세대들이 있기 때문에 어느 나라건 다수의 이성적 진보 세력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 이성적인 진보세력이 소수의 파괴적인 진보세력에 의해 대체되거나 가려지는 경우가 있는데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민주주의의 룰이 정착되어있는 선진국의 경우는 이 합리적보수와 이성적 진보가 서로 비판적인 긴장관계를 유지합니다. 서로 매끄러운 협력을 유지하고 있기에 파행 없는 민주주의가 실천되고 있으며 매끄럽게 정권을 바꾸어가되 서로 상생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나라의 지성인들에게 늘 호소합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진보와 보수의 사이에서 교량의 역할을 하는 계몽주의자들이 되라고 말입니다. 중간에 선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잘못하면 회색분자니 기회주의자니 하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렵지만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상징적으로 우리 모두는 보수와 진보 사이에 서는 계몽주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가운데 서서 (Between) 우선 소수의 극렬 보수주의자들을 합리적인 다수의 보수에 가담시키고 한편으로는 소수의 파괴적 진보세력을 계몽하여 다수의 이성적 진보세력에 편입시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 이 양대 세력 간에 대화를 하도록 하는 다리의 역할 (Bridge, Facilitator)을 하면서 독수리의 양 날개와 비행기의 두 날개처럼 제 3의 공중을 향해서 날아가야 (Beyond)을 합니다. 저는 이를 B & B (Between and Beyond) 라고 일컫습니다.


제 3의 길은 사회과학에서 학문적으로 연구되는 평화, 정의, 인권, 평등, 복지 그리고 창조 질서의 보존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명제들이 유엔·OECD의 가이드라인입니다.


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제 3 의 길을 걷는 것과 함께 1/2 운동을 주장합니다. 나의 절반을 깎은 곳에 상대방의 깎여진 절반을 들이는 것입니다. 1+1=2 이나 1/2+1/2=1 이듯이 하나가 되려면 나를 절반으로 줄여야 합니다. 결혼한 부부의 관계뿐만 아니고 남북의 평화, 그리고 통일도 1/2로 줄여진 남쪽에 1/2로 줄여진 북쪽이 들어올 때만이 가능합니다. 이를 저는 “화해의 1/2운동”이라고 합니다. 남쪽의 고집을 1/2로 줄이고 북은 북 대로 자기들의 주장을 1/2로 줄여서 이 줄여진 양쪽의 절반들이 만나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화학생들은 21세기 우리나라의 도약을 위해 Between and Beyond 의 사고를 갖고, 1/2운동의 실천자가 되어야 합니다. 북과의 관계에서 일본과 중국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규명할 것은 철저히 규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곳에 머물지 말고 제 3의 공동선(善)의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제 3의 길은 우리의 선진국으로의 도약입니다. 왜냐하면 북녘, 일본 그리고 중국 어느 나라도 적이 아니라 우리와 같이 살아야 할 이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평화주의자의 길입니다. 그러게 되면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시아는 평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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