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다큐멘터리 '어느 날 그 길에서' · '작별' 동시 상영 "말 못하는 야생동물의 대변자로 살래요"

황윤(영문·95년졸) 감독은 지난 3월 마침내 약속을 지켰다. 동물원에 갇힌 새끼 호랑이 ‘크레인’, 88고속도로에서 차에 치인 채 발견된 삵 ‘팔팔이’와 했던 약속이었다. “야생동물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속으로 약속했어요. 너희가 자유로워질 때까지 너희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겠다고. 너희 곁에서 너희의 시선으로 카메라를 들고 서있겠다고.” 크레인과의 약속을 지켜 기쁘다는 그는 아직도 답답한 동물원에 갇혀 있을 크레인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7년 동안 동물원과 도로를 쫓아다니며 야생동물에 관한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온 황윤 감독. 주옥같은 그의 두 작품 ‘작별’과 ‘어느 날 그 길에서(어느 날)’가 지난 3월 동시 개봉해 현재까지 상영 중이다.


‘작별’은 동물원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병들어가는 야생동물들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으며, ‘어느 날 그 길에서’는 지리산의 아름다운 풍경 안에서 벌어지는 로드킬(도로에서 죽음)의 실상에 대해 다뤘다. “‘작별’은 동물원 안에서의 이야기고, ‘어느 날’은 동물원 밖에서의 이야기죠. 인간의 물질문명 안에 갇혀 동물원 안에서도 밖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 동물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어요.”


딱딱한 조직생활이 체질에 맞지 않았던 그는 통신회사에 들어간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사표를 제출했다. 그리고 영화 워크샵에 등록했다. “회사 다니는 내내 위장병에 시달렸어요. 권위적인 분위기도 반복되는 일상도 못 견디겠더라구요. 그러던 중 부산국제영화제에 가게 됐고 거기서 본 예술영화, 장르영화에 감명을 받아 이 길로 들어서게 됐죠.” 다큐멘터리 등을 보며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는 황감독은 워크샵 수업을 통해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워크샵에서는 영화의 맛만 봤을 뿐이죠. 좋은 사람들을 만난게 더 큰 재산이었어요.” 워크샵 이후 그는 독립영화창작집단에 들어가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물론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어요. 부모님께서도 크게 걱정하셨구요. 그래도 그 과정이 재미있었기에 힘들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구요.”


첫 작품인 ‘겨울 밤 이야기를 듣다’를 제작하면서부터 그는 다큐멘터리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오!수정’ 촬영 스탭들의 현장을 담은 첫 작품에서 황감독은 힘든 상황에서도 꿈을 버리지 않는 예술노동가의 삶을 그려냈다. “모두들 감독과 배우에게만 집중할 뿐 스텝들의 이야기에는 귀 기울이지 않잖아요. 현실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냥 흩어지는 이야기들은 누군가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가 꼽는 다큐멘터리의 가장 큰 매력은 소수자의 편에 설 수 있다는 점이다. “스텝과 야생동물의 공통점은 주류미디어에서 주목받지 못했다는 거예요. 철저히 배제됐던 그들의 현실을 내 관점을 투영시켜 재해석한 결과물이 바로 다큐멘터리죠.”


‘작별’을 찍으며 환경과 생태 다큐멘터리의 세계에 발을 들인 그는 현재까지 ‘야생동물 소모임(야소모)’에서 활동하고 있다. “야소모를 통해 삵·수달·도요새 등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수많은 야생동물을 알게 됐어요. 부산국제영화제가 문화적 충격을 일깨워줬다면 야소모 활동은 자연에 눈을 뜨고 새로운 세상을 알게 해 준 셈이죠” 정기적으로 서식지 탐사를 간다는 그는 야생.동물 역시 ‘우리의 동반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왜 공동체의 구성원을 인간으로만 제한하는지 모르겠어요. 수많은 동식물 역시 같은 사회구성원이자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해요.”


황감독은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자막 역시 두꺼비·고라니 등 동물들의 입장에서 썼다. 가령 “눈에서 불을 뿜는 네 발 달린 짐승보다 빨리 달려야해”·“나는 그저 나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어” 등이다. “설명적인 나레이션을 좋아하지 않아요. 동물 입장에서 쓴 자막을 통해 관객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남기고자 했죠.”


대학 시절엔 스킨스쿠버와 독서를 즐겼다는 황윤 감독.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가면 ‘야생조류연구회’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그 역시 대학 시절에는 고민이 많았다.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긴 한데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겠더라구요. 연극·소설·음악 모두 좋아했는데 이 중에서 무엇이 나에게 맞는 장르인지도 혼란스러웠어요.” 전공인 영문학을 배우며 쌓은 감수성은 영화를 제작할 때 큰 도움이 됐다.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다양한 소설·희곡 등을 접할 수 있어 좋았어요. 도서관에서 전공 책 읽으며 울기도 했을 정도로 감수성이 풍부했죠.”


그는 머리가 아닌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라고 조언했다. “불교 용어 중 원(願)이라고 있어요. ‘바라는 것을 반드시 얻는 힘’이라는 뜻이죠. 가슴 속에 강한 원을 가지고 살다보면 우주가 자연스럽게 도와줄거예요.” 앞으로도 야생동물들의 대변자가 되고 싶다는 그의 눈빛은 어느 누구보다 반짝이고 있었다. 


김경원 기자 if1026@ewhain.net


▲황윤 감독의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작별’은 인디스페이스(명동 중앙시네마)·하이퍼텍 나다(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상영하고 있다.
(문의: www.OneDayontheRoa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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