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herstory, Stop history’는 주제로 남성 중심적 역사를 뒤집어보는 축제가 16일(금) 서대문 문화일보홀에서 열렸다. 올해로 10회 째를 맞은 안티 페스티벌을 꾸리는데 이화인들이 톡톡히 한몫을 해냈다. 공연·전시 분야에서 신선한 재주를 뽐낸 이화인들을 만나봤다.

 

△남성 중심적인 뻔한 역사에 해방을 선언한다
‘뻔한 얘기 제조기’라는 단막극으로 관객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한 이들이 있다. ‘여성학’ 수업을 함께 듣는 조소희(법학·06), 김상이(의류직물·06), 하지현(국문·06)씨가 결성한 ‘파워퍼프걸’ 팀이다. 이들이 펼친 단막극은 주인공, 아이템, 결말과 같은 키워드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이야기가 완성되는 컴퓨터 프로그램 ‘히스토리’를 소재로 남성 중심의 역사를 비틀어 본 작품이다.    대본을 쓴 조소희씨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1분’ 등 유명한 소설 속에서 여성의 이미지가 편향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며 “신데렐라 구조에 익숙해져버린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여성학 수업의 과제로 연극 대본을 쓴 이들은 신문에서 ‘안티 페스티벌’ 광고를 보고 오디션에 참가했다. 쟁쟁한 경쟁자들을 보며 불안했던 탓일까. 이들은 오디션을 보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했고, 마침내 심사위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다른 팀들은 대부분 공연을 간략히 소개하는 브리핑 식으로 준비를 했더라구요. 저희는 그 전에 시나리오를 완성해 그 앞에서 직접 연극을 선보였죠.” 오디션에 합격한 이후 이들은 매일같이 모여 연습실에서 비지땀을 흘렸다. “연습하느라 과외·동아리 모임에 빠진 것은 물론 수업도 결석했어요. 힘들기도 했지만 연습하는 과정에서 서로 우정이 돈독해졌어요.” 의견충돌이 극에 치닫기도 했다는 이들은 “셋이 함께 뭉치지 않았다면 도전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이번 작품을 통해 여성학을 ‘다시, 새롭게’ 보게 됐다. “연극을 준비하면서 여성학 소설인 ‘이갈리아의 딸들’을 다시 읽었어요. 또 다른 팀들의 공연을 지켜보면서 그 전에 미쳐 몰랐던 여성의 현실을 깨닫게 됐죠.” 연극에 호응해주는 이들을 보며 자신감을 얻었다는 파워퍼프걸 3인방, 이들은 유쾌한 에너지와 신선한 아이디어로 스스로의 ‘herstory’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은밀한 부분 드러내며 성적 주체성에 눈을 뜨다
“자신의 성기 그림을 그려오세요.” 엉뚱함을 뛰어 넘어 당혹스럽기까지 한 과제가 ‘성문화연구’ 수강생들에게 주어졌다. 처음엔 모두들 거부감을 느꼈다. 어떻게든 과제는 제출해야 했기에 인터넷에서 동영상을 검색하기도 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자신의 성기를 그려낸 이들은 깨달았다. 성기는 더 이상 수치스러운 곳이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그들은 자신의 몸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됐다.


안선주(경제·03), 김보경(심리·04)씨 등 ‘성문화연구’ 수강생 9명으로 구성된 ‘여걸나인’팀은 안티 페스티벌이 열린 문화일보홀에 자신들의 성기 그림을 전시했다. 수치스럽기도 했고, 부끄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그들이 깨달은 바를 남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교수님께서 이걸 학교 밖에서 전시하라고 하셨어요. 가벼운 오락거리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공적이고 권위 있는 행사의 힘을 빌리고자 했죠.” 처음 연락이 닿았을 때 주최 측에서는 ‘행사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러나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과제의 의미를 ‘여성의 역사’와 관련지어 설득했다. “바로크 시대에 여성 화가가 나타나면서 여성은 ‘바라보기’의 대상에서 벗어나 주체성을 획득했어요. 이와 마찬가지로 성기를 그려낸 저희들의 시도도 하나의 역사적 재편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성기 다시보기’를 통해 성적 편견에서 자유로워졌다는 ‘여걸나인’. 충격적인 과제가 불편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성문화연구’ 수업이 기다려진다는 학생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입을 모아 강조했다. “자신의 몸을 사랑할 때 비로소 몸의 주인이 될 수 있어요. 이번 전시를 통해 여성들이 성적 편견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길 바라요.”


김경원 기자 if1026@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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