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에 와서 학생들 가르치는 즐거움을 만끽한지 벌써 일년이 됐다. 이제 70을 바라보는 오늘까지도 끈질기게 “평화”라는 화두는  줄곧 나와 함께 있다. 지난 8월 1일부터 이화 학술원내에 평화 학 연구 센터를 설립하고 젊은 연구원들과 같이 토론하고 있는 분야도 평화다. 인권대사로 활동한 2001년부터 2006년까지도 역시 그러했고 그 이전 WCC의 아시아 국장·아시아 정책위원회 의장의 임무를 수행했던 18년간의 제네바 국제기구 생활에서도 나는 일관되게 이 제목과 씨름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방글라데시 치타공지역 샤크마 산족들의 자치권 쟁취를 위한 벵골 족과의 갈등을 해결하면서도, 영국식민지의 시작과 함께 세일론 차의 재배를 위해 강제이주 된 인도의 타밀족과 원주민인 싱할리족과의 인종분쟁종식을 위한 스리랑카의 평화정착프로그램 수행과정 속 에서도 이 분야는 나를 괴롭혔다. 1916년부터 1960년, 45년간의 벨기에의 식민세력과의 갈등 속에서 수가 약세인 키가 큰 투치족과, 수가 많고 키 작은 후투족과의 인종갈등으로 백만 명 이상의 살상자들의 비극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목격하면서도 ‘평화’라는 말은 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세계 1,2차 대전은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초등학교6학년 때인 1950년부터 3년간 치러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부터 ‘평화’라는 화두는 늘 나와 같이 있었던 것 같다. 

인류의 문자기록 역사는 대략 3500여 년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이 긴 문자기록 역사동안 280여년이라는 짧은 기간만이 전쟁 없는 평화로운 해였다. 이렇게 보면 인간들은 문자기록이 시작된 이래 92%의 기간이 전쟁과 갈등의 비극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역사는 전쟁과 폭력으로써 평화가 올 수 있다는 사람들과 전쟁과 폭력은 결코 진정한 참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다른 한편의 사람들과의 대치의 역사라고 말 할 수 있다. 

5천만 명이상의 희생자를 치룬 제2차 세계대전의 참회의 눈물 속에서 오늘날의 UN은 탄생했다. UN뿐만 아니라 여타의 모든 국제기구들의 존재이유(raison d'etre)가 평화로운 지구를 건설한다고 표방하지만 인류는 아직도 이곳저곳에서 전쟁을 치루고 있다. 이러한 주위의 환경 속에서 우리 모두는 한반도의 평화정착이라는 민족의 숙원을 달성할 직무를 갖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1953년 7월27일의 정전협정을 평화조약으로 바꾸는 일 일 것이다. 마치 1975년 “헬싱키 프로세스”의 일환으로 동서독이 미국 소련 등 35개국의 박수 속에서 체결한 평화협정의 예를 한반도에도 가져온다는 얘기이다. 그래야만 우리 모두는 63년의 분단의 역사를 마감하고 평화적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며 우리의 다음 세대가 번영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평화가 한 반도에 올수 있을까 ?

그 방법의 하나로 나는 남과 북이 함께 1/2운동에 동참할 것을 상징적으로 권고한다. 즉, 평화정착을 위해서 나의 주장과 고집을 절반으로 줄이고 상대방도 자신들의 주장과 고집을 절반으로 줄여야만 산수에서 1/2+1/2=1이 되듯이 상호 신뢰구축을 위한 화해와 평화정착은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남과 북 공히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사고의 실천자가 되자는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시 한 번 상징적으로 우리 모두를 합리적 보수 세력과 이성적 진보세력 사이에 서있다고 가정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수의 합리적 보수 세력과 다수의 이성적 진보세력이 자기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왜냐하면, 소수의 완고한 보수 세력과 소수의 파괴적 진보세력이 이들의 대표권을 가리어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화의 우리 젊은 미래의 지도자들은 이 건전한 양대 세력을 대화로써 이끌면서 이  두 세력 간의 다리의 역할을 한 후 대화 하도록 해야 한다. 이 세력들을 추슬러 마치 독수리가 양 날개로서 하늘로 우뚝 치솟듯이 제3의 지대를 향해 도약 하도록 이끄는 역할 말이다. 이래야만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영어로는 이 두 세력사이에 서있는 ‘Between’이요. 그리고 이 두 세력을 추슬러 그곳에 머무르지 않고 제 3의 길로 치솟아 오르는 ‘Beyond’이다. 이것을 나는 ‘B & B theory’라고 명명한다. 왜냐하면 모든 선진국들은 평화, 정의, 지속가능한 발전 또는 인권 신장 등등의 인류 공동선의 실현을 위해서는 합리적인 보수와 이성적인 진보의 세력이 긴장 속의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보수와 진보가 민주주의라는 틀 속에서 같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이화의 학생들이 큰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고를 갖게 될 것이다. 이 지도자와 시민들이 매끄럽게 기여를 할 때에 한반도 그리고 동북아시아 평화와 공동 번영은 가능하리라고 믿는다. 이러한 역할이 바로 이화의 신앙고백인 평화와 화해의 사도로서의 직분일 것이다.

박경서 교수(이화학술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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