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적 다양성 숨쉬는 대학
학문적 다양성 숨쉬는 대학
  • 이대학보
  • 승인 200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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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둘, 귀가 둘인데 입이 하나인 이유는?

그리스 철학자 제논은 “귀가 둘이고 입이 하나인 것은 많이 보고, 많이 듣되 적게 말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좀 더 찬찬히 살펴보자. 우리의 두 눈과 귀는 코를 기준으로 좌, 우에 하나씩 위치해 있다. 이것은 하나가 아닌 두 개로 ‘많이’ 보고 듣는 것과 동시에 양쪽의 의견을 ‘균형 있게’ 보고 들으라는 조물주의 지시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매 순간 ‘균형감각’을 요구받는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치우침 없는 균형 감각이 중요한 것은 물론이고, 식사를 할 때도 여러 가지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해야 한다.

어려서부터 우리는 한 쪽으로만 봐서는 안 되고, 다른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한다고 교육받아 왔다. 그렇다면 균형 감각을 지니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학문의 다양성’이다.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다양한 지식과 이론을 접할 때 우리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최근 경제학에서의 ‘학문 다양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11일 홍훈(연세대), 이병천(강원대) 교수 등 전국의 경제학자 80명은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대 경제학부는 김수행 교수 후임으로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 교수를 임용함으로써 학문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열린 대학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지난 달 서울대 경제학부 대학원생 70여명은 교내에 ‘마르크스 경제학전공 교수 채용’을 요구하는 호소문을 붙이기도 했다.

이들은 경제학에서 ‘학문적 다양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33명은 모두 신고전주의 주류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다. 유일한 ‘마르크스 경제학자’였던 김수행 교수가 퇴임한 이후 학생들은 좌파 경제학 강의를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이 서울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현재 국내에 마르크스 경제학 교수가 있는 대학은 10개가 채 안 된다고 한다.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마르크스 경제학의 영향력은 크게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양극화 등 자본주의의 폐해가 깊어지는 상황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연구도 필요하다. 현재 주류가 아니라고 해서 학문적 가치까지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직립할 수 있는 ‘균형 감각’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러나 시력에 이상이 생기게 되면 사람은 균형 감각을 잃어 넘어지거나 낙상하기 쉽다. 학생들이 양쪽 눈을 모두 뜨고 균형 감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대학은 최소한의 학문적 다양성을 보장해야 한다.

외눈박이 시각이 아닌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진 인재를 배출하는 길은 다채로운 사고의 교류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학문적 다양성의 증진이야말로 실업자 양성소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고급 인재 양성소로 가는 길이다.

김경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