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월, 마이크로 소프트(MS)의 빌 게이츠가 은퇴한다. 그는 MS의 성공전략을 자선 재단에 적용할 것이라는 의지를 밝히며 남은 생의 우선순위를 의료와 보건을 통한 봉사활동으로 바꾸었다.

은퇴 후 빌 게이츠는 아내와 함께 설립한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Bill and Melinda Gates Foundation)의 자선활동에 매진할 것임을 밝혔다. 빌 게이츠의 행보에 동참해 세계 최고의 부자인 워렌 버핏 역시 자신의 재산 중 85%에 속하는 370억 달러를 기부할 것임을 약속한 적이 있다. 우리는 이 같이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행하는 도덕적 책임을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행해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흔적을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는 그 흔적을 로마 귀족들의 참전에서 찾았다. 당시 로마인들은 전쟁이 발생하면 자신들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스스로 전장에 나갔다고 한다. 초기 로마귀족들의 그 같이 용감하고 책임감 있는 행동은 사회적인 신뢰와 유대감 형성의 첫 발이었으며 그들 로마인의 2천년 역사를 세워 올린 주춧돌이었다.

그런가 하면 조선시대 유난히 의병을 많이 배출한 제봉(霽峯) 고경명 집안도 자랑스러운 우리의 노블레스이다. 제봉(霽峯)은 뛰어난 공직자였으며 뛰어난 시인으로 임금의 총애를 받았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耳順)의 나이로 전투에 참가했으며 “밤중에 놀란 닭울음소리를 듣고 견딜 수 없어 마지막 남은 조국애의 한 조각 붉은 마음을 갖고 일어섰노라!”라는 그의 마상격문(馬上檄文)은 아직도 읽는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한다. 최근 영국의 해리 왕자가 아프간 최전선에서 10주간 복무를 하고 돌아온 것 역시 그들 영국 왕실의 자긍심이 어디서부터 출발되는지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준 사례였다. 

이달 3일 이명박 대통령은 공직자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말했다. 세 명의 장관  내정자가 청문회 단상에 오르기도 전에 낙마(落馬)를 하고 김성이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 청문 요청서가 채택되지 않은 국무회의에서였다. 최고 140억 원에서 몇 십억에 이르는 강부자 내각의 재산규모를 보며 국민들의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도덕성 논란을 잠재우려는 듯 재산 헌납을 약속 했던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모습도 새삼 기억났다.

애초의 노블레스는 귀족 계층을 뜻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남다른 특권과 지위에 대한 자부심을 보다 숭고하고 정결한 도덕의식으로 드러냈다. 자신들이 영위하는 평화로운 삶과 자신들을 향한 존경심의 가치가 결코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부와 권력은 개인 혼자만의 힘으로는 얻을 수 없다. 그들은 ‘상속’이라는 단단한 돌다리 아래의 차갑고 어두운 그늘에는 필연적으로 빈곤하고 허기진 누군가가 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현대에 이르러 노블레스는 부자나 공직자와 같이 현대적 권력을 누리는 자들을 지칭하게 되었다.

한국의 노블레스는 자신들이 누리는 특혜의 발자취를 한 번이라도 더듬어 보았을까. 노블레스의 기부가 단순히 선심성 퍼주기가 아님은 당연하다. 또한 그것을 ‘환원’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이유 또한 분명하다.

성경의 레위기 4장에는 속죄제에 대한 내용이 있다. 자신이 저지른 죄를 속죄하기 위해 재물을 내는데 이때 지도자와 평민의 것이 다르다. 사회적 신분이 높을수록 더 엄격한 도덕의식을 요구했고 그 이유로 지도자의 범죄를 더 무겁게 여겼기 때문이다.

300억 대의 재산을 소유한 이 나라의 대통령, 그리고 강부자 내각을 보며 다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화두가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새 정부 지도자들이 그들이 누린 영화(榮華)만큼 높은 책임 의식을 수행하길 기대해 본다.

김다은 (정외·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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