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주년 문인 기념 특집(구인회 회원 김유정·김기림·이무영)

고등학교 시절 언어영역 문제집을 몇 권 풀어본 학생이라면 ‘구인회’를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회원이 여러 번 교체됐지만 항상 아홉 명을 유지했다는 구인회는 1933년 결성돼 약 3~4년간 활동했다. 순수문학에 목적을 두고 ‘많이 읽고 많이 쓰자’는 단순한 강령에 따라 행동한 그들은 당대 활동한 카프(KAPF)의 계급문학적 성격과 뚜렷이 대비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올해 100주년을 맞는 김유정·이무영·김기림은 모두 이 구인회를 거쳐 간 작가들이다. 구인회 결성 당시 팔팔한 스물여섯 살이었던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김유정(1908~1937)에게 있어 1933년은 처녀작 ‘산골 나그네’와 ‘총각과 맹꽁이’를 잡지에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한 시기이다. 구인회로 그를 끌어들인 이상을 비롯해 박태원 등 또 다른 구인회 회원을 만나게 된 것도 같은 해의 일이다. 이후 1935년 조선일보·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당선되며 문단의 주목을 받은 김유정은 이상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구인회 후기 동인으로 참여하게 된다. 스물아홉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는 소설 30편, 수필 12편, 편지·일기 6편, 번역소설 2편을 썼다.

한편 구인회 창단 회원인 김기림과 이무영은 1933년 8월부터 동인 활동을 시작했다. 1930년 조선일보에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를 발표하며 등단한 김기림(1908~?)은 모더니즘 시의 기수로서 활약했다. 1920년대 시가 표방한 낭만주의를 비판한 김기림은 감상을 배제하고 지성을 강조하는 시들을 발표한다. 그의 이러한 문학적 활동은 구인회에 가담하고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1950년 월북하기 전까지 ‘문학개론(1946)’이나 ‘시의 이해(1949)’와 같은 평론집을 내기도 했다.

농촌소설 작가로 알려진 이무영(1908~1960)은 구인회 활동 당시에는 오히려 무정부주의적 성향이 두드러지는 작가였다. 이무영이 구인회 활동 전후로 발표한 ‘반역자(1931)’나 ‘먼동이 틀 때(1934)’등은 오히려 카프적인 성격이 나타났다. 

동인이라는 게 늘 ‘(뜻이) 같은 사람’들 만은 아닌가보다. 농촌소설의 대표주자 이무영과 모더니즘 시를 주창한 김기림의 작품세계는 너무나 다르다. 해학과 풍자의 소설 쓰기로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준 김유정 또한 이들과는 다른 색깔의 작품군을 형성하고 있다.

이무영의 약력에서 볼 때 구인회는 작은 점에 불과하다. 김기림 또한 마찬가지다. 김유정의 경우 구인회를 계기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나 워낙 단명한지라 구인회의 영향만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구인회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구인회 회원 중 하나인 박태원이 김기림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와 있다.

“돌아오셨으니 반갑소. 오랜만에 서울 거리를 함께 거닙시다. 술은 배우셨소? 당신의 <철도연선>은 나와 함께, 죽은 이상이도, 매우 좋게 본 작품이었는데, 그 뒤로 다시 창작활동이 없는 것은 도시 술을 배우지 못하기 때문인가 하오. 우리 가치 술 좀 자시고, 누구 끄릴 것 없이, 죽은 이상(李箱)이의 욕이나, 한바탕 합시다.”

이렇게 보면 또 그들이 아주 다르지만은 않은 것 같다. 작품 세계야 다를지언정 문학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비슷비슷한 모양이다. 카프에 대항해 순수하게 작품으로 말하고자 했던 구인회는 문단의 새 방향을 제시하는 한 축으로 남았다.

구인회는 뚜렷한 활동을 남긴 단체가 아니다. 구인회의 단체 활동은 1935년 발간한 기관지 ‘시와 소설’ 정도인데 이 또한 창간호를 끝으로 발간되지 않았다. 네 차례의 문학 강연회를 마지막으로 구인회는 해체된다.

그리고 100년. 우리는 이제 창창한 이십대를 보내고 있고, 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나 고인이 됐다. 그러나 글 안에서 그들은 여전히 스물여섯의 청년들이다. 책장을 펼치는 것만으로 백 년 전의 누군가와 조우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텍스트는 시대마다 새롭게 읽혀지고 해석된다. 오늘은 책장에서 김유정의 소설을 다시 한 번 집어 들고, 100주년을 함께 기념하는 것은 어떨지.

김기혜 기자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