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금) 폐막제의 대미를 장식한 영산줄다리기. 이화인이 대동하던 곳에는 언제나 ‘영산줄’이 있었다. 1983년 이화민속제 당시 축제준비위원회의 주최로 시작되었던 영산줄다리기가 올해로 25년째를 맞았다.
축제의 백미인 영산줄다리기의 중심에는 25년 동안 21번의 대동제에 참가해 영산줄다리기를 지도했던 김종곤 씨가 있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6호 영산줄다리기 명예보유자 김종곤 선생에게 이화와 영산줄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1982년 당시 영산줄다리기 기능보유자였던 일봉 조성국 선생의 권유로 전수장학생이 되어 영산줄과의 인연을 맺었다. 대학마다 민주화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던 시기, 그의 은사는 “대학생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이 시대에 꼭 해야 할 일을 하라”며 그의 손에 영산줄을 쥐어주었다.
영산줄은 그에게 ‘줄은 말이 아닌 행동이며, 특권이 아닌 민중’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그는 영산줄은 사람들을 대동하여 응집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고 했다. 그에게 영산줄은 불의에 대적하는 저항의 줄이요, 민족 통일의 줄이요, 환경의 줄이었다. 그는 “영산줄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창조적 발전을 거듭해 왔기에 지금까지도 의미 있는 전통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고 했다.
1995년 이후 현재까지 영산줄다리기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학교는 우리학교 뿐이다. 지금은 학생들이 학생문화관 앞 숲에서 줄을 꼬고 있지만, 1983년부터 2002년까지는 학교 입구의 나무 그늘에서 줄을 꼬고 광장에서 줄을 만들었다.
이화에서 영산줄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기억에 남는 일도 많았다. 그는 1983년부터 1984년까지 꼬우미장을 했던 김영신(과학교육과)씨가 영산줄을 당기다가 줄이 끊어지자 땅을 치며 통곡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또 1983년∼89년에는 빗발치는 최루탄 세례 속에서 줄을 만들었던 일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라고 덧붙였다.
학교 축제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낮아지면서 영산줄을 꼬는 학생의 수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이런 놀이 문화를 이어온 것만으로도 이화의 대동제는 자랑이자 긍지라고 말했다.
이화여대와 영산줄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는 김종곤씨. 가장 오랫동안 영산줄의 전통을 이어받아온 학생들의 모습을 그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영산줄다리기를 지속해온 학생들의 집념과 인내가 사회에 나가서도 큰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이화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