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교양수업에서 이상의 「날개」와 김수영의 시 여러 편을 만났다. 언어영역 지문 안에 갇혀 ‘문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작품들이 ‘의미’로 다가왔다. 현실과의 괴리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일생동안 고민했던 작가 이상. 문인이 가진 글이나 책은 돈이 될 수 없었고 돈이 없으면 원하는 것을 할 수 없었던 사회에서 그는 자신에 대한 고민으로 삶을 채워갔다. 윤리 책에나 있을 법한 ‘나는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삶 속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그는 처절하게 고민했다. 미치광이라 손가락질 당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날개」는 고민의 산물 중 하나였다.


이상의 소설이 ‘나’를 고민하게 했다면 김수영의 시는 ‘사회속의 나’를 생각하게 했다. 작은 것에만 분개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그를 보며 내 얼굴이 붉어졌다. 작은 것에만 분개하는지 조차 몰랐고 심지어 작은 것에도 분개할 줄 모르는 것이 나의 현주소였다. 삶에 치여 사회는 어떻게 되가는지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가끔 한 번 훑어 보는게 전부였다. 사회 안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것이 너무 많았다. 내가 누군지도, 사회는 어떻게 변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저 과제와 시험 걱정에내 고민의 용량은 한정되어 있었다.


나만 이런 걸까. 그렇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좋은 성적을 받아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었던 십대시절. 그 때 우리에게 ‘나’를 성찰할 시간이 얼마나 있었을까. 아침부터 새벽까지, 학교·학원을 옮겨 다니며 공부하기 바빴던 그 때, 왜 이 공부를 해야 하는지 주체적으로 생각해 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렇게 대학생이 되면 ‘무엇이 될지’ 만을 고민하다 20대 절반이 지나간다. How 보다 What 에 집착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평균 80년을 산다는데 그 긴 인생을 어떤 사람으로 살지는 고민하지 못하고 길어야 5-60년이면 끝날 ‘무엇’에만 목매고 있다.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외부의 힘에 의해 빼앗길 수도 있는 그 ‘무엇’ 때문에 오롯이 내 것일 수 있는 ‘어떻게’는 포기하는 셈이다. 그나마 ‘무엇’이라도 고민하면 다행이다. 점수에 맞춰 대학에 오듯 직장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꿈을 이야기 하면 바보취급 당하는 세상이라지만 우왕좌왕 하다 남들 따라 넓은 길로 가려는 건 너무 약한 모습이다.


스스로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질 못했는데 사회와 나를 연관 시키는 일은 오죽할까. 사회는 곧 경쟁의 무대라고 인식하게 한 시대가 미울 수도 있다. 청춘의 숨을 조여 오는 취업난과 실업난이 핑계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말 그대로 핑계일 뿐이다. 우리는 사회와 무관 할 수 없다. 사회의 아픔을 느끼고 그들의 분노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정당하지 못한 외침에는 반기를 드는 용기도 필요하다. 민주주의를 외치며 분신도 불사하던 6,70년대 대학생들처럼 화염병을 들고 일어서라는 말이 아니다. 사회는 혼란스러운데 나는 공부하느라 바쁘다며 새침하게 책만 읽지는 말란 얘기다. 책 속에는 답이 없다. 답은 사회 안에서 내가 찾아가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살아있는 학문이다.


오늘의 20대가 ‘나’와 ‘사회’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8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우리는 목청 높여 외칠 구호도, 몸을 던져 투쟁할 대상도 없었다. 학교 안에서 시키는 공부만 하면 됐다. 좋은 성적 받아서 좋은 학교에 가면 부모님께 칭찬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온실에서만 싱그러울 수 있는 여린 화초가 되고 말았다. 정작 우리가 살 곳은 온실 안이 아닌데도 말이다.


온실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세고 땅이 거칠어 서 있기 힘들었다. 이상과 김수영을 보며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하고 싸우기로 했다. 직업을 고민하는 시간은 줄이고 나를 고민하고 어떤 사람으로 살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기로 했다. 스펙을 올리기 위해 친구를 경쟁자 삼는것은 오늘로 안녕이다. 그 대신‘사회’라는 이름의 거친 광야에 한 발짝을 들여 놓았다. 광야에서도 꽃을 피우는 강한 생명력은 결단하고 행동할 때 싹트기 시작한다.

문수아(언론.04)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