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실 안에 가느다란 섬유들이 형태를 이루며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실처럼 늘어진 섬유에서 공간이 느껴진다.


‘올해의 작가 2008 장연순 전’이 23일(금)부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장연순 교수(섬유예술 전공)는 거즈·삼베·아바카 등의 섬유 작업을 통해 섬유 공예의 장을 열고 있는 작가다. 이번 전시는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역시대순으로 조명한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진한 쪽빛의 육면체들이 눈에 띈다. 장 교수의 최근 연작인 <늘어난 시간>이다. 언뜻 보면 섬유로 이뤄진 육면체지만 자세히 보면 얇은 마가 면을 이루고, 그 면이 중첩돼 공간을 이룬다. 이 작품은 면과 직사각형의 형태을 가지고 있는데도 뒤의 면이 보일 정도로 투명하다. 매우 성글게 짜여 빛이 많이 투과되는 ‘아바카’라는 소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전시장에는 200여 점의 <늘어난 시간>이 전시돼있다. 그의 손을 거친 섬유는 풀을 먹일 때에 단단한 형태감을 얻었다가, 빛이 그것을 가로지르면서 다시 희미해진다.


쪽빛으로 이뤄진 작품은 <늘어난 시간>뿐이 아니다. <사유의 공간>이나 <추상적 사유> 등 다수 작품들이 쪽빛을 이용한 색감을 가지고 있다. 장연순 교수는 “우리 전통의 색채 가운데 물(水)에 해당하는 쪽은 중요한 색”이라며 “쪽색 한가지만으로도 무한한 색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을 평한 미술사가 강우방씨는 “쪽빛이 장 교수의 작품에 동양적인 특색을 부여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갈색을 띤 조형물 <놓아라 또 놓아라; 변화를 통하여 변화없음을 발견한다>는 형태물에 실밥들이 제각기 늘어져 있어 난잡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모두 비슷한 모양이다. 여기서 관객은 제목의 ‘변화를 통해 변화 없음을 발견한다’는 의미를 상기하게 된다. 장 교수는 그러한 부드러움과 무한한 확장성이 섬유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작품 <비우고 또 비우고 비우고 또 비우고;힘들게 비우고 나면 어느새 다른 것이 가득하고>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아바카로 이뤄진 단순형태의 나열이지만 모양 하나하나에 작가의 노고가 깃든다. 그러나 중간을 비운 작품들이 반복되자 그 역시 쌓인 것처럼 시야를 ‘가득’ 채운다.
현재 그의 작품은 역시대순으로 전시돼있다. 이런 전시 방식은 관람객이 그의 현재 작업스타일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알아갈 수 있도록 한다.


그는 80년대에는 면·광목·실크에 납방염 기법 위주로 평면의 작품을 만들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통섬유와 색에 관심을 가지고 모시·삼베를 가지고 입체작업 실험을 시작했다.


현재 그의 작업은 그동안 해온 작업들의 연장선 위에 있다. 최근 그는 전통소재보다 성긴 아바카 섬유 위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빛의 투과성이 크고 가격이 저렴해서 다량으로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작품은 섬유의 부드러움을 살리기도 하고 인위적으로 형태를 부여하기도 한다. 동시에 빛을 이용한 무한한 변위의 과정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올해의 작가 2008 장연순 전(展)’은 7월20일(일)까지 관람 가능하다. 입장료는 3000원이다.


박현주 기자 quikson@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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