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다리"
"연극은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다리"
  • 이채현 기자
  • 승인 2008.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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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차범석 희곡상 받은 극작가 김명화(교육심리·88년졸) 씨

“계속 낙방하는데도 극작하는 순간, 순간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때 느꼈죠. 아, 연극 없는 내 인생은 끝이구나”

어린 시절, 그는 서재가 좋았다. 친구들과 노는 일은 항상 뒷전이었다. 고등학생이 돼서도 소설만 읽었다. 그는 “제발 대학은 들어가라”는 어머니의 눈물 섞인 하소연을 기점으로 공부를 했고, ‘심리’라는 두 글자가 마음에 들어 교육심리학과에 입학했다. 학교에 적응하기 위해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그는 “딱 하나를 빼고 모든 동아리가 신입부원 모집이 끝나있었다”고 말했다. 시골에 살아 ‘연극’이 실재하는 줄도 몰랐다는 그가 ‘사범대학 연극반 신입부원 모집’ 포스터 앞에 멈춰선 그때부터 김명화(교육심리·88년졸)와 ‘연극’ 사이 뜨겁고 질긴 인연이 시작됐다.

△사악한 남성만 연기하는 남성 단골 배우였죠

연극의 꽃은 배우인 만큼 그도 한때 배우를 꿈꿨다. 그러나 ‘무대 공포증’은 극복할 수 없는 벽이었다고 손사래를 쳤다. “휴, 죽었다 깨어나도 배우는 못해요”

3학년이 되던 해, 각 단대 연극반이 ‘대학 연극반의 역량을 키우자’며 총연극회로 뭉쳤다. 남자 없는 이대 총연극회 단원들에게 망치질은 예사였다. 조명을 설치하기 위해 건물 창 밖, 지붕 위로 올라가는 일도 전부 스스로 하곤 했다. 그런데도 김씨는 밤새며 연습하고, 무대 설치하는 일은 별로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보다는 80년대, 시대가 힘들었다.

“80년대라는 시대가 그렇죠…, 밖에서 다른 학생들은 운동하고 있는데 전 안에서 연극을 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그때 느낀 ‘연극이 현실과 단절돼도 되나’하는 문제는 이제 숙제되어 따라다닌다. 그는 그때 힘들었던 과거를 회상하며, “이화가 나를 강하게 키웠다”고 말했다. “고집스레 극작을 밀고 나간 힘도 그것”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힘들었던 만큼 그때의 경험과 친구들은 잊을 수 없다”며 “친구는 이화가 준 재산”이이라고 말했다. 총연극회 동기들과는 아직도 종종 모인다. 김씨는 “그때 그 비슷하게 이상한 친구들을 못 만났다면 저는 저만 이상한 줄 알았을 거예요”라며 장난스런 미소를 지어보였다. 총연극회와는 아직도 인연이 깊어 작년에는 ‘루나자에서 춤을’에서 연출을 맡아 후배들과 함께하기도 했다.

△인생의 한고비를 넘긴 느낌이에요, 오히려 가벼워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김씨는 졸업 후 중대대학원에서 연극학을 공부하다가 객석예음상의 비평상 부문에 응모해 당선됐다. 그러나 희곡 작가로서의 등단은 만만치 않았다. “도저히 연극 없인 못살겠는데, 평론만 하다 보니까 현장에 대한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계속 떨어졌지만요” 4년여 동안 번번이 실족하면서도 그는 극을 놓지 않았다.

“쓰면 쓸수록 희곡이 더 좋아졌어요. 떨어질 때마다 인생이 끝나는 느낌이었지만, 그보다도 ‘이게 안되면, 없으면 내 인생은 정말 끝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래도 그에게 등단을 준비하며 썼던 작품은 몇 년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됐다. 실제로 대산문학상 수상작 ‘돌날’과 올해의 베스트 연극 5 수상작 ‘첼로와 케첩’ 등이 모두 당시에 쓴 작품들이다.

작년에 무대에 오른 작품 ‘바람의 욕망’은 기존 여성극의 반란이라는 호평을 들으며 연장 공연 중이다. 그는 “남자 선배를 ‘형’이라고 부르며 여성성을 부정하던 우리 세대 여인이 능동적으로 여성성을 추구하는 삶을 살 때의 심정을 그려봤다”며 여대 속 자유로움에서 비롯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무대 위에 진짜 살아있는 인간을 그리고 싶다. “인간을 그리고 싶어요. 그것이 인간의 숭고함이든, 어둠이든 관객들이 ‘저 무대 위에 나와 똑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그에게 있어 극은 결국 사람에게 다가가는 길이다. “연극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나라는 성 안에 갇혀 있었을 거예요.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다리가 연극이죠”

김씨는 신화학자 조셉 캠벨이 말한 ‘천복’을 아느냐고 물었다. ‘천복’이란 한 사람이 평생 사랑할, 하늘이 내려준 ‘일’을 알아보는 것이란다. 김씨가 말을 멈추고 빙그레 웃는다. “그래요. 나는 천복을 알아봤고, 기우뚱기우뚱 거리지만 내 천복을 향해서 걸어가는 중인 것 같네요”

이채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