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문인을 찾아서 시리즈(1) 이화동창문인회장 안혜초(영문 65년졸) 씨

“나는 이화 그 자체지요.” 뼛속 깊이 이화인 한 시인이 있다. 이화여중·고·대학교를 졸업한 후 현재 이화 동창문인회 회장직 은퇴를 앞둔 안혜초(영문·65년졸)선배다. 신년에 외대 정문이 바로 보이는 2층 경양식당에서 그를 두 번 만났다. “아이 어떡해, 내가 좀 늦었지요? 미안해 미안해, 또 보니 더 반갑네” 성급하지만 소녀스런 말투가 나왔다. 첫 만남 때도 세 권의 책과 시들을 선물하더니, 이번에도 그의 가방에는 손으로 쓴 시와 자료들이 그득하다.

이화 동창문인회와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 듣고 싶어요.

동창문인회는 저와 선배들이 구상해 만든 모임이에요. 기자를 그만두고 쉬고 있는데 선배들이 이화100주년 전 해에 ‘이화 출신 문인의 모임이 없어서 되겠느냐’며 함께하자 했지요.

회장까지 하셨는데?
해온 것이 있고 선배들도 붙잡아서 지금까지 왔죠. 2006년에 회장을 맡을 때도 다른 선배를 추천하려 했어요. 그 해가 이화 동창문인회 20주년·이화문학상이 10주년이었어요.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열심히 기도했는데 목사님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하셨지요.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 생각하고 일하다보니 벌써 은퇴에 이르렀네요.

막바지에 오니 가장 뿌듯한 점이 무엇인가요?

동창 문인작품집과 더불어 이화문학생 행사에는 가장 중요한 연중 행사인데요. 글쓰는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 한 편이라도 '더 마음에 드는 글을 써서' 남기는 것이 제일이라는 생각으로 책을 냈습니다.

동창문인회 말고도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 한국여성문인회 이사 등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이렇게 열심인 이유가 있나요?
문인으로서 이런 문단활동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작가는 셋으로 나눌 수 있지요. 작품에만 몰두하는 사람, 문단과 작품 활동을 조화롭게 하는 사람, 작품보다는 문단 활동에 충실한 사람, 이렇게요. 전 두 번째가 되려고 노력하죠.

시간을 많이 빼앗길 텐데요?
창작에 방해받지 않으려 애써요. 물론 다 집어치우고 글만 쓰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렇지만 내가 무엇 때문에 문학을 하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또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려고 하지요. 난 문학을 위한 문학은 질색이에요. 그러니 문인은 사회성도 중요하죠.

문학을 위한 문학이 싫다는 것은 생활에 가까운 작품경향과도 맞닿은 것 같네요.
맞아요. 나는 사회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시인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내 시는 관념적이지 않고 쉽죠. 그는 호박찌개나 가스레인지 같은 주부로서의 일상시어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얼마 전에는 불탄 숭례문에 관한 시를 쓰려고도 했다.

혹시 좋아하는 시인이 있나요?
누구 한 명을 콕 집을 순 없어요. 그런데 유치환님의 ‘깃발’처럼 생명력 가득한 힘 있는 시를 좋아해요. 박두진님의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하는 시 있죠? 이런 밝고 희망찬 시들이 제 기질에 잘 맞아요.

시인들의 영향도 받았나요?
제 시는 ‘사랑’이에요. 시집을 낼 때마다 그 사랑이 깊고 넓어졌죠. 그런데 제 작품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사람이 아니라 신앙이에요. 40대 초반에 하나님을 만난 후 시가 바뀌었거든요. 대표적인 시가 ‘쓸쓸함 한 줌’이에요.

기자나 시인 둘 다 글 쓰는 사람인데, 어떤 쪽이 더 마음에 드세요?
기사는 사실을 쓰니 미흡할 때가 많죠. 기자를 하면서 내 생각을 주관적으로 표현할 수 없어 답답했어요. 하지만 시는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으니까 행복하죠. 나는 진실애가 강한 사람이라 객관적인 저널리즘보다 시가 좋아요.

선배님께 시는 무엇인가요?
시는 내게 평생 결혼은 하고 싶지 않은 숙적 같은 연인이에요. 농담 삼아 돈도 안 되지만 헤어질 수도 없는... 그는 창 밖을 바라봤다. 시와 오랜 사랑을 겪어 무르익은 안온한 표정이었다.                   

이화에서도 문학을 했나요?
물론이에요. 이화문학회 회원으로서 시화전과 시낭송을 했어요. 학보사에 기고도 했지요.

이 기사가 개강 첫 호에 실릴 텐데요. 이화의 봄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개나리꽃이 참 많았지요. 휴웃길에는 빨간 꽃 사루비아가 매혹적이었어요. 사람들은 이화인에게 화려하다 말하기도 했지만 사실 우리는 화사하고 소박한 사람들이에요. 아참! 봄에는 바람이 몹시 세고 썰렁했던 기억도 나네요. 그래서 저는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연상했지요.

인터뷰가 끝나자 주문한 생강차와 아메리카노가 반 쯤 줄어 있었다. 깜깜해진 창 밖에는 눈으로 말갛게 씻긴 하늘에 별이 반짝였다.     

김혜경 객원기자

 

안혜초 시인은
1967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귤 레먼 탱자」(1975), 「달 속의 뼈」(1980), 「쓸쓸함 한 줌」(1986), 「아직도」(1986), 「그리고 지금」(1987), 「살아있는 것들에는」(2001) 등 여섯 권의 시집과 「사랑아 네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에세이집 1983), 「내 안의 또 한사람」(서한문집 1991)의 산문집을 출간했다. 그는 한국기독교문학상(1993), 이화를 빛낸 상(1993), 『문학21』대상(2000), 서울문예상 대상(2001), 윤동주 문학상(2001), 청하문학상 대상(2004), 순수문학상 대상(2006) 등을 수상했다.

 

약력
이화여중고,이화여대 영문학과 졸업
1967년 「현대문학」3회 추천 완료
다년간 신문기자 역임
세계여기자·작가협회 한국지부 부회장 역임
한국 현대시협 부회장 현 이사
한국 기독교 문인협회 부회장 현 자문위원
강남문인협회 부회장 현 자문위원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이사역임
한국여성문인회 이사
한국 시인협회 기획위원
통일문학 자문위원
한국문인협회 대외협력위원
이화여대 동창문인회 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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