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빛문학상 당선자 정시은씨 인터뷰

“일주일동안 3kg가 빠질 정도로 썼어요. 공부하느라 벼락치기 했던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죠”
대학 2학년 때 난생 처음으로 절실하게 소설이 쓰고 싶어서, 무작정 교수를 찾아가 “소설이 너무 쓰고 싶다”고 하소연했다는 제3회 글빛문학상 당선자 정시은(국문·08졸)씨. 당선소감을 묻자 “장편소설을 쓴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경험이었다”며 “예상치 못했기에 더 영광스럽다”고 쑥스럽게 웃었다. 현재 서강대 영상대학원에서 시나리오를 공부하며 문학의 굴레에서 바쁘게 걷고 있는 정씨를 후문 앞 북카페에서 만났다.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를 하는 도중에도 책 생각을 하던 열 네 살 정씨의 꿈은 화가였다. 열여덟 살 때는 영화가 너무 좋아서 영화감독을 꿈꿨다. 그 이후 스물두살 때 소설가라는 꿈을 품기까지, 예술가라는 한 길에서 벗어나지 않은 셈이다. 정씨는 소설가에서 영화감독으로 전향한 이창동감독과, 영화를 하다가 글을 쓰게 된 밀란 쿤데라를 언급하며 “다른 예술의 경험이 내 글을 더 다채롭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화에서는 그 경험의 폭을 더 넓혔다. 국문학 전공 수업에서 여성주의적인 시각을, 그리고 사학 전공 수업에서 역사에 대한 가치를 배웠다. “국문학은 여성주의적으로 세상을 보도록 훈련시켰고, 강철구 교수님의 사학 전공 수업은 내 시야를 더 넓혀줬죠”

△갇힌 공간에서 피어난 한 떨기 연화, <연화전>

그의 경험들이 한 곳에 집약된 것이 이번 글빛문학상 수상작인 <연화전>이다. <연화전>은 현재와 과거, 픽션과 팩트, 겉 이야기와 속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로 얽힌 작품이다. 그렇듯 ‘볼 거리 많은’<연화전>에 대해 심사위원단은 “영화같다”고 평가했다.“애초에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라 그런가봐요” 그는 <연화전>에 역사를 보는 정씨만의 독특한 시각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조선시대에 글을 쓰는 한 여성을 둘러싼 이야기예요. 판타지적 요소가 많아,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중간지점을 찾기 위해 고심했어요”

이번 작품을 위해 그는 작년 여름부터 자료조사와 플롯 짜는 일을 병행했다. 겨울에는 겨울잠 자는 동물처럼 어두운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너무 힘들어서 친구들에게 세 장만 써달라고 하고 싶었어요. 일주일 동안 20시간도 못 자곤 했거든요” 그렇게 갇혀서 글을 쓸수록 <연화전>의 내용은 더 풍성해져갔다. “여성은, 억압당할지라도 그 틈을 찾아서 상상력을 표출하죠. 히잡을 쓴 여성들이 화려한 눈화장을 즐기는 것처럼요”

작품의 소재는 작자미상의 고전문학 ‘당한림전’을 배우면서 생각해냈다. “당한림전은 여성이 남성으로 자라, 같은 여성과 결혼까지 하게 되는 내용이었어요. 분명히 안채에 갇힌 여성의 머릿속에서 나온 이야기겠죠?” 그는 가부장제적 사회였던 18세기 조선말, 유난히 여성영웅소설이 많았던 점을 강조했다. 

현대판 여성영웅소설인 <연화전>의 주인공 ‘연화’는 어릴 적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그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창작을 금지 당했다. 폐쇄적인 조선말의 가정에서 살림에만 몰두해야했다. 그러다 어느날 남편이 죽고 과부가 된 연화는 자결을 강요당한다. 죽음을 피하기 위해 집을 떠난 연화는 세상을 바꾸려 하는 자주적인 과부 조직을 만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음껏 글을 쓴다. 이러한 글쓰기 주체로서의 여성 이미지는 여러 가지 사물로 상징화돼 있다. 연화가 쓰는 책 <연화전>을 찍어내는 ‘돌배나무’는‘환상’,‘꿈꾸다’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정씨가 좋아하는 작품은 쥐스킨트의 <깊이의 강요>다. 쥐스킨트의 작품은 누구에게나 어렵지 않지만, 한편으로 깊이있는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고. 사람이 좋아, 소통하고 싶어 쉬운 글을 쓰려 노력한다는 그의 모토도 그것이다. 정씨는 “이 시기에 산다고 해서 이 세상을 알 수 있을까요?”라고 운을 뗀 뒤 “우리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예민하게 제시해주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죠”라고 말했다. “정적인, 안정적인 것은 추구하지 않아요. 큰 상을 탔지만 안주하지 않고 초심을 유지할 거예요”<연화전>의 주인공 연화는 <춘향전>에 대해 “죽은 사람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글”이라고 평가한다. 이번 글빛문학상 당선을 발판 삼아 정씨도 한국 문단에 강한 생명력을 불어넣는 대작가로 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이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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