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는 '종합예술'이죠
박제는 '종합예술'이죠
  • 김경원 기자
  • 승인 2008.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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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 박물관 윤석준 기술원


미국에서 박제는 ‘종합예술’로 불린다. 죽은 생물을 살아있는 모습으로 되살리는 박제 작업은 생물학적 지식은 물론 섬세한 예술적 감각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한번 시작하면 꼼짝 않고 작업을 마쳐야 해 인내심도 필요하다. 종합예술인 박제부터 표본 수집·관리, 자료 분류까지 이 모든 일을 혼자 해 내는 ‘달인’이 있다. 자연사 박물관의 산증인, 윤석준(53) 기술원이다.

윤씨는 18살의 어린 나이에 이화와 인연을 맺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돈을 벌기 위해 새와 열대어를 파는 상점에서 일했어요. 조류, 열대어 등을 사육하던 저를 눈 여겨 보셨는지 의과대학 김헌규 교수님께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을 하셨죠.” 비록 남의 가게였지만 사육하는 일이 즐거웠기에 그는 정중히 거절했다. 그러나 교수의 끈질긴 설득 끝에 그는 72년 6월 이화로 오게 됐다. “처음부터 실습용으로 쓰이는 황소개구리를 사육했어요. 그 당시 정부에서도 실패한 황소개구리 사육에 우리는 성공했죠. 김헌규 교수님께서는 이 일로 정부에서 표창까지 받았어요.”

사육을 위해 들어왔던 그는 74년부터 자연사 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때부터 그는 당시 관장이던 교수님을 통해 박제를 배우기 시작했다. “10시 전에 퇴근한 적이 없었죠. 조금이라도 더 배우기 위해 대학원 수업에 들어가서 함께 듣기도 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박제 작업이 올해로 35년째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동물 사체를 다루고, 밤을 새서 작업하려면 힘들지 않을까. “물론 힘들 때도 있지만 완성했을 때 느끼는 희열감이 있어요. 폐기 직전에 있는 동물들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고 생각하면 뿌듯하기도 하죠.”

30년이 넘는 실무 경험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서대문자연사박물관, 목포자연사박물관 등이 개관할 때 자문위원을 맡았다. 주위의 추천으로 방송에도 출연했다. KBS ‘환경스페셜’에 5회 출연했으며, 신동엽이 진행하던 ‘느낌표’의 코너 ‘남북퀴즈’에서 동식물 문제에 대해 자문을 했다. 그의 박사급 실력은 해외까지 퍼져 일본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기도 했다. “그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 표본, 박제 전문가가 얼마 없었어요. 우리나라에 더욱 필요한 일이라고 느꼈기에 미련없이 거절했죠.” 3박4일 동안 윤씨에게 박제를 배운 한 일본인은 1시간 만에 여치를 박제하는 그를 보며 ‘신의 손’이라고 탄복했다고.

요즘은 학자들의 연구의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수집한 자료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정리할 자료가 무려 20만 점이나 된다. “수장고 5개가 자료로 가득 차 있어요. 완성하려면 15년 정도 걸릴텐데 제 임기가 7년 남았으니 그 이후엔 걱정이네요.” 자연사 박물관에서 유일한 남자 직원이기에 등을 교체하는 일도 직접 나서서 한다.

동식물, 곤충을 박제하는 그는 꽃들의 순간을 사진으로 박제시킨다. 지난 주 채플 시간 사진영상 ‘꽃들의 인사’에 등장한 50장이 넘는 사진들은 모두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처음에는 박물관 자료로 쓰기 위해 찍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찍다 보니 사진 찍는 자체를 즐기게 되더라구요.” 교직원들의 모임 ‘이화사진동아리’ 회원이기도 한 그는 항상 카메라를 몸에 지니고 다닌다. 새벽 이슬이 맺힌 꽃, 캠퍼스의 야경을 찍기 위해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정도로 부지런하다. 찍은 사진들은 짧은 글과 함께 그의 블로그 ‘파랑새의 숲’(blog.naver.com/wnsdoswns)에 올린다. 자연의 숲, 생명의 숲, 사람의 숲으로 나눠진 폴더에는 클로즈업한 꽃 사진부터 눈 내리는 캠퍼스의 사진까지 다양한 사진들이 올라와 있다. “희망을 상징하는 파랑새를 좋아해서 ‘파랑새의 숲’이라고 이름을 붙였죠. 가끔 블로그 이웃 맺자는 사람이 많은데 내가 자주 접속할 시간이 없어서….” 그는 인터뷰 도중 모니터를 켜서 블로그에 올린 사진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스피커를 켜서 배경음악 'When I dream'을 들려주는 윤씨에게서 소년 같은 감수성이 느껴졌다.

30년 이상 이화와 함께 해 왔지만 그 역시 7년 후에는 퇴직하게 된다. 퇴직 후 계획을 묻자 농장 이야기를 꺼냈다. “고양시 덕양구에 농장을 만들어 나비가 먹는 먹이식물을 심었어요. 이 농장을 나비가 산란하고 애벌레가 번식할 수 있는 생태공원으로 가꾸고 싶어요.” 다시 태어나도 생물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윤석준씨. 다만 학문적으로 기반을 닦아 양질의 논문을 쓰고, 수업에 필요한 기자재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천직(天職). 하늘이 내린 직업이라는 뜻이다. 윤씨야말로 천직이라는 두 글자가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까.

김경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