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하고 도넛 받아가세요”

선거판에 ‘선물’이 등장했다. 후보자들이 유권자에게 한 표를 부탁하며 주는 뇌물이 아니다. 이는 어떤 후보한테든 투표 좀 해 달라고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서 유권자에게 주는 선물이다.
지난 11월6일(수)~11월8일(목) 있었던 인문대 학생회 선거에서 인문대 선관위는 투표하는 학생들에게 도넛을 하나씩 주었다. 따뜻한 도넛을 받기 위해서였는지, 투표를 하기 위해서였는지 투표가 이뤄진 양일 간 학관 로비 앞 투표소에는 학생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이는 작년에 투표율 50%를 넘지 못해 불가피하게 재선거를 실시해야 했던 인문대 선관위의 고육책이었다.

올 해 연말은 선거가 풍년이다. 교내에서는 단과대학 학생회·과 학생회 선거가 있었다. 바로 지난주에는 7년 만에 4개 선본이 등장해 주목을 끈 총학생회 투표가 실시됐다. 그리고 5년 만에 한 번씩 돌아오는 17대 대통령 선거가 약 보름정도 남았다. 그러나 ‘선거’를 대하는 대학생 유권자들의 반응은 쌀쌀하기만 하다.

이제는 개표만 할 수 있다면 감사한 세상이 됐다. 전체 투표율이 낮아 연장투표를 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28일(수)·29일(목) 양일간 실시된 우리 학교 40대 총학생회 선거도 투표 기간 동안 투표율이 절반을 넘지 못했다. 각기 다른 성격의 네 선본의 등장, 다양한 선거유세 등의 변수에도 불구하고 중선관위는 30일(금)까지 연장 투표를 실시해야 했다. 결국 절반을 약간 넘은 51.86%의 투표율로 선거가 종료돼 또다시 아쉬운 반쪽짜리 선거로 남았다. 

이런 상황은 단지 우리 학교만의 일은 아니다.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에는 98년 선거 이후 매년 연장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고려대 총학생회는 낮은 투표율을 어떻게든 보완하기 위해 핸드폰으로 투표할 수 있는 모바일 투표제를 도입했다. 대학사회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끙끙대고 있다.

투표율이 낮은 선거가 진행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낮은 투표율을 통해 당선된 대표자는 그 정당성에 관해 지속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작년 총학생회 ‘이화 in 이화’는 약 50%의 전체 투표율로, 타 선본과 400여 표 차이로 당선됐다. 사실상 이화인 전체의 25%정도의 지지율로 당선된 것이다. 이 후 총학생회가 사회 연대를 하거나, 한미FTA반대 시위에 나갈 때 마다 학내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붉어졌다. “왜 이화인 과반수가 찬성하지 않은 한미 FTA 반대 시위에 나가느냐”는 것이 문제였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투표하고, 그런 선거에서 절반이 넘는 학생들의 지지를 얻었다면 총학생회의 활동에도 더욱 큰 힘이 실릴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떤 선거든 투표율이 낮아지면, 거대한 조직이나 큰 단체가 유리한 상황이 벌어진다. 몇몇 유권자의 마음만 사면 가능하기 때문에 부정행위도 발생할 위험이 있다. 이렇게 낮은 투표율은 지역주의·연고주의 등의 바뀌어야 할 작은 변수로 소위 ‘선거판세’를 흔들 수도 있게 된다.

선거는 취업·학점 등 개인 관리에 바쁜 대학생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지게 됐다. 정치나 사상은 고루한 옛 얘기다. 하루하루 과제와 연애·경력 쌓기에 바쁘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 우리의 대표자가 어떤 얼굴이든 상관없다. 우리는 아직 피부로 느끼고 있지 못하지만, 사회와 정치의 변화는 개인의 삶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대표자는 중요하다. 절반의 투표율·절반이 믿고 당선된 대통령의 힘은 미약하다. 내가 뽑고, 내가 믿은 후보를 뽑아서 그에게 ‘대표성’을 부여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첫걸음이다.

국가의 대표를 뽑는 선거가 5년 만에 돌아왔다. 역대 가장 많은 12명의 대선 후보가 출마했고, 선거 유세도 한창이다. 언론들은 이번 대통령 선거 투표율을 지난 2002년 투표율보다 훨씬 낮은 60%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낮은 투표율이 답은 아니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쟁취와 투쟁을 통해 얻어낸 소중한 한 표, 이제 그 권리를 당당하게 행사해야 한다.

유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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