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치른 지 3년이 넘었지만 항상 수능 날 즈음엔 부쩍 생각이 많고 우울해진다. 수능을 치기 전 열심히 공부하던 기억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무엇을 이루기 위하여 그렇게 열심이었을까. 수능이라는 큰 산을 하나 넘고 나서 대학에 왔을 때, 어떤 꿈과 포부를 갖고 있었을까? 분명 지금보다는 더 생생하고 젊은 꿈이었을 거다.
 우리는 수동적이다 못해 억압적인 초,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대학 입시를 위해 12년 동안 시험기계로 훈육되어 왔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내 옆에 앉은 친구보다 높은 수능점수를 받기위해, 다른 학교 학생들보다 더 높은 평균점수를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는 학업에 지장이 되는 모든 욕구를 부정해야만 했다. 그 때만 참고 견디면 자유와 진리를 외치는 캠퍼스의 ‘낭만’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고등학교 시절 꿈꿨던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가 점점 더 벌어지는 것 같아 당혹스럽다. 잔디밭에 앉아 책을 읽고 정의와 진리를 외치는 캠퍼스 이야기는 20년 전의 ‘전설’일 뿐이다.
 대학은 1학년 때부터 취업준비에 정신이 없는 취업학원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사람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경향이 있다.’는 심리학상의 명제를 제쳐두고라도, ‘쉬는 것이 두렵다’고 말하는 대학생들이 늘고 있다. 대학교 1,2학년 때는 토플 토익등 외국어 공부에 여념이 없고 3학년 때는 인턴 자리를 찾아보려 인터넷을 헤맨다.  
 
경제학자 우석훈씨는 우리 20대를 ‘88만원 세대’라 부른다. 지금의 20대는 상위 5%정도만이 한전과 삼성전자 그리고 5급 사무관과 같은 ‘단단한 직장’을 가질 수 있고, 나머지는 이미 인구의 800만을 넘어선 비정규직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거다. 비정규직 평균임금 119만원에 20대의 평균임금의 비율인 74%를 곱하면 이들의 월 평균임금은 88만원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88만원 세대’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다.  
 우석훈씨는 이 책에서 대한민국 대부분의 경제조직들이 지금의 20대에 대해 진입 장벽을 한껏 올려놓았다고 지적한다. 자신들은 사용하지 않던 토익과 토플과 같은 영어 점수를 요구하고, 더 많은 경쟁을 촉진하는 것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세대 간 경쟁이 극대화된 이 게임의 승자가 된다 하더라도 산업화 세대가 즐겼던 만큼의 경제적 과실이 지금의 20대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적다는 것이다.
 
지금 20대의 정신 건강은 이미 위험 수위에 달해 있다. 유럽에서는 이런 문제를 조금이라도 완화시키기 위해서 지역마다 정신 상담소 같은 것들을 설치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것들을 사회적으로 풀기보다는 교회와 같은 종교 기관과 점집과 같은 곳에서 좀 기묘한 방식으로 해소하는 편이다. 공동체가 완전히 해체되지 않은 상태에서 살아온 앞 세대들은 정신세계의 고통을 해소할 문화적 장치들이 있었지만, 지금의 20대는 그야말로 개별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상태다.
 
아무리 우리가 갇혀 있는 세대라고 할지라도 역사적으로 우리 세대에게 부여된 임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산업화 세대, 민주화 세대는 그들 행적이 남긴 공과를 따져보지 않더라도 무언가를 이루어 냈다. 우리는 어떻게 '주체'가 될 수 있을까. 가장 우울한 예측을 하자면, 우리 세대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해보지 못한 세대가 될지도 모르겠다.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가 만든 세계에서 그들이 남긴 공과 과를 그냥 받아들인 채로 살뿐. 소위 '무기력한 세대' 정도로 훗날의 역사는 기록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김윤영(언론정보학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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