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1월, 근 반년 동안 준비했던 ‘세계대학생중국어변론대회’가 드디어 끝이 났다. '대회가 끝나면 얼마나 속이 후련할까'라고 생각해왔는데, 막상 모든 것이 끝나고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려고 하니, 만감이 교차하면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우리는 교내 선발과정을 통해 학교 대표로 뽑혔다. 유금단·염호정 언니와 함께 예선에 참가해 고려대·한양대와 겨루었다. 어느새 한국 대표, 아시아 대표로 중국에서 세계 유명대학교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우선 대회가 정식으로 시작되기 전에, 각국 대표들과 함께 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신문 발표회(기자회견)에 참가하게 되었다. 앞으로 있을 대회 때문인지 각국대표 학생들 표정에는 모두 초조함과 긴장감이 감돌았다.

둘째날 대회가 시작되고 ‘성형’이라는 주제로 이집트 카이로대학교와 붙게되었다. 무대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웅장하고 멋있었고, 쿵쿵거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무대 위에 올랐다.

순식간에 20분의 시간이 흐르고, 토론은 끝이 났다. 심사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관중석은 지나치리만큼 조용했고, 서로의 손을 꼭 잡으며 가만히 숨죽이고 있었다.

결과는 5대0으로 대승리였고, 촬영이 끝나자마자 교수님들과 기쁨을 나눌 시간도 없이 여기저기서 같이 사진찍자는 중국 관객들 요구에 어리둥절했지만, 너무나 뿌듯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접어두고, 우리는 가장 큰 경쟁상대인 미국 예일대와의 토론에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다시 전력투구해야 했다.

미국 예일대와 우리 학교는 참가국 중에서 중국이 실력이 가장 뛰어났기 때문에 두 번째 토론은 서로에게 있어서 꼭 넘어야 할 큰 산이었다.

예일대와의 열띤 토론이 끝나고, 15명 중 4명을 제외한 관중평가단 모두 우리 학교를 지지했고 우리는 승리에 그 누구보다 승리를 자신했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결국 예일대의 편을 들어주었다. 예상외의 결과에 모두들 의아해 했다. 순간 콧등이 시리며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결국 결승 토론대회에는 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나·호정언니·금단언니에게 있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우승이 아니었다. 예일대·옥스퍼드대·카이로대 등 각국의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문화적 차이를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내 자신의 눈높이를 더욱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예일대와의 토론회가 끝난 뒤, 예일대 친구들과 방에서 자유롭게 오랫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친구들이 중국 문화 자체에 지니고 있는 열정은 정말 대단했고, 중국어를 배우는 목적 또한 그 바탕위에 놓여진 것이었다.

중국에 가서 세계 각국의 학생들과 중국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쩌면 그동안 우리들은 공리적인 목적으로 중국어를 배어오지 않았나하는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외국학생들은 취업·학점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중국어를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어쩌면 이번 경험이 우리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될지도 몰라’라며 호정언니가 한말이 어찌나 가슴에 깊게 와 닿던지 그날 밤은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북경에서의 열흘을 마지막으로 수개월을 함께 울고, 웃으며, 고생했던 '이화 중문과 드림팀'은 이제 각자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려고 한다. 알 수 없는 허전함에 몸서리치고 있는 지금이지만, 분명히 앞으로의 나날은 더욱더 새롭고 발전해나가는 하루하루가 될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야, 이제 곧 꿈에서 깨어나야 되지.” 예일대 친구 중 한명이 한국으로 오기 전 했던 말이다. 하지만 당분간은 화려한 이 꿈에서 영원히 깨어나고 싶지 않은 것은 나만의 욕심 일런지도 모르겠다.


윤민주(중문 ·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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