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간지에서 요즘 젊은 여성들의 여행 취향이 휴식과 피부관리, 명품 쇼핑 중심의 리조트 형으로 바뀌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 기사를 읽을 때만 해도 나는 나와는 무관한 철없는 젊은이들의 추태로 생각하고 크게 마음 쓰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 친지 한분이 전화를 걸고 우리 학교에 다니는 따님이 방학 중 친구들과 발리로 여행 갈 계획이라는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었을 때, 나는 비로소 이게 남의 일이 아니란 걸 알았다. 도대체 대학생들이 발리 같은 리조트에 가서 무얼 하느냐며 나는 분노를 폭발하였다.

발리가 여행지로 나쁘다는 것도 아니고 리조트 형 여행이 필요없다는 것도 아니다. 나의 편견일지는 몰라도 발리같은 휴양지는 미래를 준비하기에 시간이 부족한 대학시절에 친구들과 어울려 갈만한 곳은 아니다. 외국 여행을 할 돈과 시간 이 있는 운 좋은 젊은이라면 배낭을 짊어지고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문화를 보고, 느끼고,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인생을 배워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지난 학기 다양한 전공생들이 수강하는 수업에서 서양 언론사를 설명하던 중 나는 유럽에 배낭여행 다녀온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알아보았다. 129명이 수강했던 강의에서 놀랍게도 겨우 10% 정도만이 유럽을 여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80년대와 90년대 한창 배낭여행 붐이 있었을 때는 과반수이상 되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줄어들었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고등학교에서 역사교육과 제2 외국어 교육을 등한시한 때문인가? 아니면 인터넷 서핑으로 세계 곳곳의 풍물을 영상물로 간접 체험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경제난, 취업난 등 경제적 압박 때문인가? 그런데 이제서야 후줄근하고 고생스런 배낭여행이 편안함을 추구하는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매력적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읽은 신문기사는 나를 더 심란하게 하였다. 신림동, 신촌 등대학가 근처 모텔들이 초고속 인터넷과 홈 티어터를 갖춘 럭셔리 휴식공간으로 변모하여 학생들의 MT와 모임 장소로 인기라는 내용이었다. 젊은이들 사이에 새로운 “방”문화가 형성되고 있다는 소식은 결코 반갑지 않았다.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다소 고생스러워도 통과의례로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던 대학 MT가 움직이기 싫어하는 젊은이들에 의해 추억속으로 사라지고 된 것이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M(mobile)세대는 이 시대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사이버 세계의 유목민들, 이동통신 혁명의 기수들로 불리우는 M세대의 이중생활은 바쁘게 움직이며 살아왔던 우리같은 이름없는 세대에게는 배신감마저 들게 한다.

우치다 타추루 라는 일본 대학 교수가 쓴 “하류지향” 이라는 책(번역판이 나와있음)을 보면서 나는 미래를 생각하고 지적역량을 키우기 보다는 현재를 즐기는 일본 젊은이들의 하류인생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노동주체”가 아닌 “소비주체”로서 자아를 키운 요즘 젊은이들이 학교에서도 “교육서비스를 사는 사람”이 되어 즐겁게, 편하게 해주는 “상품”에만 관심을 갖게 되며, 결과적으로 지적역량을 키우지 못해 하류인생으로 전락한다고 주장한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심각한 현상으로 부상되지 않고 있으나 몇가지 증후군들은 좋지 않은 조짐으로 보인다.

정보기술의 혁신으로 노동시장이 재편됨에 따라 청년실업은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지금까지 발달심리학자들은 생의 주기를 아동기, 청소년기, 성인기, 노년기로 나누고 대학시절을 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 넘어가는 준비를 해야 하는 유예기(moratorium)로 보았다. 그러나 뉴욕타임즈 컬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Brooks)는 최근의 사회상황을 고려하여 청소년기 다음에 방황기를 의미하는 오디세이 기를 추가하면서 이러한 방황기가 대학 졸업후에도 상당기간 지속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The Odyssey Years, 10월 11일자). 일본의 하류지향 젊은이들이나 오디세이 기의 청년실업자들은 급속도로 변화하는 불안한 사회환경에 대응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진지한 배움의 고통 끝에 가야 얻을 수 있는 생산적인 미래를 적극적으로 개척하며 기다리지 못하고 쉽게 포기하고 당장의 편안함에 안주하게 된 것이다.

하류인생으로 전락하거나 기나긴 오디세이 기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명실상부한 M 세대답게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들을 이끌어주는 것은 여전히 지식과 인간관계이다. 곧 시작되는 겨울 방학동안 이화인들은 안락함을 박차고 나와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배낭을 메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 바란다.

최선열 교수(언론홍보영상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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