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 빠진 차별금지법
알맹이 빠진 차별금지법
  • 변선영 기자
  • 승인 200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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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차별받지 아니한다”를 내세우는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이 무색하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모든' 국민에서 여집합으로 분류된 소수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 10월2일(화) 금지대상 차별범위를 나이·성별·장애 등 20개 영역으로 규정한 차별금지법(안)을 입법예고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로 언급된 차별금지법은 2006년 7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정부를 상대로 법안제정을 권고하는 과정을 거쳐, 올 10월 입법예고 됐다. 그러나 불과 며칠 사이에 법안은 ‘성적지향·학력·병력·출신국가·언어·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가족형태 및 가족상황’의 7개 조항이 삭제된 채 법제처 심의로 넘겨졌다. 여기에는 보수 기독교계의 동성애 반대주장과 경제 논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재계의 거센 입김이 한몫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남아있는 차별금지법의 금지대상 차별 범위는 ‘성별·장애·나이·출신민족·인종·피부색·출신지역·용모 등 신체조건·혼인여부·임신 또는 출산·종교·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사회적 신분’ 등 13개 영역으로 줄어들었다. 이렇듯 주요 학심 조항이 빠져버린 차별금지법의 조항축소는 헌법이 보장하는 ‘차별받지 아니할’ 국민의 권리를 무시한 처사다.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국가가 소위 ‘사회적 소수자’라 일컬어지는 국민의 권리는 보호하지 않겠노라 천명한 것과 다름없다.

몇 가지 경우만 따져보면 현재의 차별금지법이 근시안적이고 허 뿐인 형식적 법안임을 증명해낼 수 있다. 농촌총각의 국제결혼 비율이 증가하는 현실에서 피부색 차별은 금지하고, 출신국가는 차별한다는 말은 “한국에서 태어난 혼혈아는 받아들이되, 한국으로 시집온 이들의 어머니는 차별해도 된다”는 논리가 된다. 또한 개인의 혼인·출산여부 등에는 차별을 두지 않지만 이혼·재혼 등의 과정에서 충분히 발생 가능한 다양한 가족형태에는 차별요소를 두겠다는 말 역시 "결혼여부와 출산여부에 차별은 두지 않지만, 이혼가정이나 편부모가정 등 가족형태를 갖게 되면 그 때부터는 차별을 하겠다는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참으로 어불성설이다.

차별금지법의 축소만이 문제가 아니다. 차별의 구제에 있어 실질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느냐는 것도 쟁점사항으로 부각되고 있다. 인권위가 권한을 발휘할 수 있었던 시정명령과 이행강제금 부과 항목이 모두 삭제되면서 인권위는 차별시정에 대해 강제력을 가지기 어렵게 된 것이다. 애초 인권위가 권고했던 법안에 따르면 차별행위가 적발될 경우 단지 권고 수준을 넘어 ‘명령’까지 집행할 수 있었다. 또 시정명령을 기간 내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 같은 사항은 명령을 실천할 때 까지 반복 부과 가능했다. 하지만 이 규정이 삭제됨에 따라 인권위는 차별사례를 진정하더라도 ‘권고’이외에 다른 조치는 취할 수 없게 됐다.

결국 모든 조항이 입법예고 당시와 같이 돌아간다 하더라도 차별의 구제에 있어 실질적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차별금지법 축소문제와 관련해서는 외국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에 본부를 둔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지난 6일(화) 대한민국 국회에 공식 서한을 보내 “국회 측은 법무부가 차별금지 법안에서 누락시킨 차별 보호 범주들을 다시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한국의 차별금지법 수정안은 오히려 다수에 대한 보호를 누락시켰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12개 인권단체 역시 공동성명을 통해 “성적지향에 기초한 차별을 금지하는 규정에 대해 보수파 기독교 단체로 부터 매우 강한 반발과 항의가 있다고 들었다”며 “당초 법안에 반대의견이 있다는 것 자체가 차별의 증거”라고 일축했다.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제3차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에서 ‘성적지향’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는 권고에 서명한 대한민국 정부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세계적 반대여론 속에서도 차별금지법 축소를 고집하는 정부에게 묻고싶다. '국제회의에서의 서명은 외부에 보여주기위한 '일회성 쇼'를 한 것일 뿐이었는가?'라고 말이다.


차별금지법이 차별을 조장해서는 안된다. 부는 차별금지법을 공약으로 만들었을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 차별타파가 절실한 소수자들에게 더욱 큰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보다 더 기본으로 돌아가 한 국가의 최고 법규인 헌법에 명시된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고 ‘차별’받지 않을 방안이 무엇인지 재고해봐야 한다. 전 국민이 차별받지 않은 행복한 대한민국이 되는 길은 가장 기본으로 지켜야 할 것을 지킬 때 가능해 질 것이라 감히 장담한다.

변선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