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선거의 시절이 돌아왔다. 신문지나 브라운관에서는 온통 대선과 관련된 뉴스뿐이다. 대선입후보자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촉수를 곤두세우고 있을 때 한편, 밝혀지는 비리들은 대선으로만 읽히다가 덮어지기도 한다. 모두들 예민하다. 대선 후보들 한마디에 주가와 시청률이 오르락내리락 할 때, 누구는 춤을 추고 누구는 깡통을 차고 있다. 교문 밖, 선거 판에서 반전이 계속되는 스릴 넘치는 영화처럼, 새로운 뉴스에 떠들썩한 바깥 탓에 유독 교내는 조용하다.

다시 시선을 교문으로 옮겨보자. 교내에는 곳곳에 학생회 입후보를 알리는 자보들이 어느 눈동자에도 전송되지 못한 채, 맵찬 바람에 흰 소매 자락을 펄럭이고 있다. 입후보자들을 자세히 보면 더 놀라운 건, 투표할 대상이 없다는 것이다. 투표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선거인이 누구를 당선인으로 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의사표시’라는데, 선택할 당선인이 없다는 것이다. 유독 단독후보가 많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찬성과 반대일 뿐이다. 그마저도, 입후보자로 나와주면 고마워해야 할 상황이다.

사실 대학생의 운동, 정치 무관심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 설문조사에서는 무려 38%가 차기 대권, 누가 되든 관심 없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여전히, 역대 대선 20대 투표율은 저조하다. 그렇다고, 대학생들이 선거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100여 개 대학의 230명의 학생들은 `공명선거 기원 국토대장정`을 하였고, 10월 8일에는 ‘대학생 유권자 행동’을 출범하여 바른 선거를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 각 정당 산하로 있는 대학생 활동 단체들은 여전히 활발하게 정치 활동을 하고 있다.

어느 선거든 마찬가지겠지만, 이번 대선에서의 대학생의 중요성은 크다. 바로 유권자 연령이 만 20세에서 만 19세로 낮아져서 07학번들까지 대학생들의 표심이 중요한 역할을 미칠 것이다. 이는, 위태위태한 21C 초반을 청년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이다. 들쑥날쑥 한 경기와 대책 없는 청년실업문제, 비정규직 문제, 한없이 치솟아가는 등록금 인상. 학문의 상아탑(象牙塔)이었던 대학은 코끼리의 상아(象牙)보다 더 값어치 없이, 그저 취직하기 위한 ‘탑’으로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이런 시기에, 대학생들의 의사는 정책을 바꾸고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화의 투표율은 어떠한가. 2006년 제39대 총학생회 선거는 51.88%를 기록했다. 이는 2005년보다 3.94% 낮아진 수치라고 한다. 매번 선거의 결과를 투표율로 판정 지을 수는 없지만, 분명 한 것은 다수의 의견이 포함된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어, 내가 바라는 사회를 위해서 나는 얼만큼의 의무를 다하고 있었는가. 자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선거는 변화이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어디에 옮겨졌는가’ 생각해야 할 것이고, ‘누가 그 치즈를 잘 관리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제 11월은 선거의 달이다. 이제 이화 곳곳에서는 변화를 위한 공약들이 희망처럼 외쳐질 것이다. 후보자들은 매니페스토(manifesto)에 따른 공약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혹시, 지난 한 해를 불평으로 투덜거리기만 하지 않았는가? 총학생회와 세상에 대한 건의사항을 술안주로 꺼내어 오징어처럼 질겅질겅 씹고 있진 않았었나? 말로만 움직이는 세상은 없다. 세상을 조종하고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것은 입이 아니라, 손과 발이다. 섬섬옥수와 하얗고 조그만 발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투표소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발과 지지자의 이름 밑에 도장을 꾹 눌러 찍는 손이다.

유인선(국문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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