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대학보 조판 작업을 하면서 한 개 지면을 저장한 파일이 손상된 적이 있다. 모든 조판 작업을 완료해서 인쇄소에 보내기만 하면 되는 단계에서 한 면이 담긴 파일이 열 수 없게 됐다. 시간에 맞춰 일을 진행해야 하는 마감 상황에서 비상이 걸린 셈이다. 다급한 마음에 인쇄소와 컴퓨터 수리 업체에 수소문한 결과 다행히도 이 파일을 복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복구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설치를 한 후 손상된 파일을 복구 프로그램에 넣었다. 마우스로 선택한 파일을 끌어 복구 파일에 갖다 대기만 했는데도 순식간에 파일이 고쳐져 바탕화면에 생겼다. 글과 사진 등 내용이 그대로 복원됐다. 약 삼십 분 동안 긴장을 해야 했지만 한편으로는 컴퓨터 기술 발전에 놀라기도 했다.

이렇게 컴퓨터상에서 작업하던 문서에 오류가 났을 때 이를 복구 할 수 있는 장치는 분명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이다. 그러나 일장일단이라는 말이 있듯 편리한 기술 시대가 우리에게 안겨 주는 위기감도 있다. 얼마 전 신정아씨의 가짜 학위 의혹 사건으로 사회가 들썩했을 때, 우리는 이 컴퓨터 기술의 위력을 다시 한 번 경험했다. 검찰이 신씨의 집에서 발견한 컴퓨터 자료를 복구해 이미 지워진 이메일을 복구한 것이다. 대검 디지털 수사팀에서 이메일 자료를 복원함에 따라 신씨가 부인해 온 변양균씨와 내연 관계를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가 됐다. 우리가 컴퓨터 파일을 휴지통에 넣고 지워도 그 파일의 이름만 지워질 뿐 주소는 모두 기억돼 있다. 때문에 후일 이 주소를 찾아 복구 할 수 있다. 10byte(한글 한 글자가 2byte)만 기록이 남아 있어도 복원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물론 모든 형태의 메일이 복구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지운 파일이 다시 재현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신정아씨 메일 복구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자신의 메일이나 정보가 타인에 의해 복구되고 알려질 것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더욱이 자신의 부인이나 남편의 불륜 관계를 의심하며 가정용 컴퓨터의 메일이나 자료 복구를 의뢰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디지털 기기는 사용 흔적을 남기기 때문에, 저장된 자료는 물론이고 사용 이후 남아있는 기록을 삭제하기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무심코 버리거나 중고로 내다 판 컴퓨터에 신상 정보나 공인인증서 등 중요 정보들이 언제든 유출 가능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터넷 경매를 통해 구매한 41개의 PC 가운데 30%에서 1천3백여 명 분의 개인정보가 발견됐다. 2004년 카이스트에서 발표한 ‘개인정보 유출실태보고서’에 따르면 개인 주민등록번호나 거주지, 이름과 인터넷 뱅킹 사용내용까지 컴퓨터 안에 들어 있었다고 한다. 보험회사에서 중고로 매각한 컴퓨터에서는 개인정보가 무더기로 발견되기도 했다. 또 버려진 컴퓨터에서 얻은 760명의 신용카드번호를 이용해 거액을 모은 범죄 사례도 있다. 컴퓨터 뿐 아니라 매일 같이 사용하는 휴대전화 역시 마찬가지다. 범죄사건의 알리바이 확보 등을 이유로 최근 몇 개월간 사용한 문자 메시지나 통화기록들은 통신사에 모두 저장 돼있다. 때문에 본인 휴대전화기 상의 통화목록이나 문자 메시지 내용을 지운다 하더라도 통신사에 남아있는 기록에 의해 복원이 가능하다.

근래에 급속도로 보급되고 있는 USB(휴대용저장장치)메모리 역시 정보 유출 통로의 하나다. 이 메모리 안에 은행 인증서를 다운 받아서 다니면 어떤 컴퓨터에서라도 은행 업무나 학자금 대출 업무를 처리 할 수 있어 일반인들이 중요 정보를 많이 담아 다닌다. 그런데 USB 메모리는 보통 손가락 두 개 정도 크기여서 외부 컴퓨터에 연결 한 후 그냥 두고 가 분실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한 사람 개인의 정보가 유출되는 것도 문제지만 위의 사례처럼 보험회사가 가지고 있는 자료나 회사의 기밀이 복구 돼 악용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될 것이다.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는 기술을 활용하는 것도 좋지만, 이에 앞서 개인이나 기업 정보 유출이나 보안 문제에 대해서도 반드시 고려가 돼야 할 것이다.

이슬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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