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이화 학술원 특별강좌 -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교수

 

오늘의 주제는 21세기 민주주의 도전 과제로 강연에서는 ‘역사의 종언’에서의 논지를 되짚으며, 21세기 민주주의의 도전과제에 대해 논의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먼저는 사회가 왜 민주주의를 향해 가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설명하고, 다음의 네 가지를 민주주의의 과제로 설명하려고 한다. △이슬람과 정체성 정치△국가수준의 민주주의 부재 △빈곤문제와 정치 발전 △과학기술개발이 바로 그것이다.

‘역사의 종언’에서 논제는 현대와 현대화(modernization)이다. 책에서는 현대화는 모든 사회가 겪는 일관된 프로세스이며 모든 나라가 민주적 정치제제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막스는 인류 역사 발전의 최종 단계가 공산주의 유토피아라고 주장했지만, 나는 공산주의로 끝나지 않고 민주주의로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대화라는 것은 논쟁의 여지없이 현대사회의 가장 중요한 현상이다. 실제로 동아시아 국가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현대화와 민주주의의 과정에서 빈곤탈출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어떤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은 이를 부정하며 전근대사회에 대한 향수를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사상가들은 현대화를 통해 잃는 것이 있는 만큼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수천만 이상의 인구가 현대화의 혜택(보건, 교육, 구직)을 좇아 빈곤한 저개발 국가에서 개발 국가로 이동한다.

현대화는 그 시작과 원인이 국가별, 경로별로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비슷한 현대화 과정을 겪는다. 한국의 경우, 1987년부터 독재정권에서 민주주의로 전환하며 민주제도를 건설해 나갔다. 이 시점에서 우리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민주주의가 현대화의 자연적인 결과인가?” 하는 것이다. 이는 과연 중국이 한국의 현대화와 유사한 과정을 겪을 경우 결국 민주주의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질문과 같다.

우선 중국도 어떤 종류든지 민주적 제도의 기반이 필요하다. 최근 중국산 장난감에서 독성 물질이 검출되어 소비자의 건강을 우려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는 중국정부가 생산업을 규제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해외 시장의 반응에 대해 중국정부도 해외 소비자에 대한 책임감을 의식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제품이 자국의 시장에서도 판매되고 있었으며, 자국 소비자들도 동일한 피해를 입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중국의 소비자들은 미국이나 다른 해외 소비자들과 같이 문제 제기나 개선 요구를 할 수 없었다. 이를 뒷받침할 민주적인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회사에서 이와 같은 문제에 책임감을 느끼는 대상은 상위체계 즉 직장 상사나 중국 공산당의 고위층으로 국한된다. 자신의 하위체계, 즉 소비자에 대해서는 책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민주사회라면 이럴 수 없다. 환경과 안전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반드시 하위체계에 대해서도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현대사회에는 인권이나 민주주의의 기능적 면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민주주의와 현대사회에 있어 힘의 원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와 ㅇ달리하는 학자도 있다. 사무엘 헌팅턴 교수의 경우 현대화는 어떤 종교에 의한 특정 문화권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주장하며, 현대화는 기독교와 같은 문화적 사상체계에 의한 것이지 보편적 가치관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문화는 사회 종교에 의해 정의되기 때문에 서구화되지 않고 전통적 가치관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의 현대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나도 문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내가 믿는 것은 현대화 과정이라는 보편적 프로세스가 있다는 것이다.

현대화의 프로세스라는 논리의 시작은 기술과학 개발에 있다. 과학기술지식은 그 지식이 발전함에 따라 성장을 해나가는 것이지 기존의 과학기술지식을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 발전으로 전반적인 사회의 생산력이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경제개발도 일관된 정치적 결과를 낳는다. 경제개발로 보다 도시화되고, 산업화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중산층이 생기면 이들은 보다 안정된 시스템 요구하게 되며 이것이 민주적 기반을 촉진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도 경제성장의 시점에서 민주화 바람이 불었으며, 그 시점에 문맹률 등의 사회 지표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안정된 민주화가 정치변화를 야기하게 된다. 물론 문화적 관점에서 가치적 변화가 수반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학문적 교류가 흥미로워지게 되는 것이다.

문화가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주장을 구체적 예로 든다면, 많은 국가에서 여성을 위한 교육에 큰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남녀 역할에 대한 문화적 생각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사회 발전 속에서도 여성은 언제나 집에 머물러야 한다고 믿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해 지고 있다. 왜 그런가? 현대는 경쟁사회이기 때문에 이러한 경쟁상황 속에서 노동력의 50% 이상인 여성 노동력을 쓰지 않으면 시장경제 발전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로 사우디에서 여성은 운전이 불가능하다. 수많은 여성을 위해 해외에서 운전할 수 있는 남성인력을 동원하고 있다. 이러한 인력의 사용은 사우디가 석유자원이 풍부해서 가능한 것일 뿐 다른 나라들은 이것이 불가능하다.

이에 대한 헌팅턴 교수와 나와의 차이점을 이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있다. 헌팅턴 교수의 관점에서는 사우디는 300년 후에도 여성은 운전을 안 할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게 그들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반면 나의 시각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우디도 현대화를 통해 머지않아 여성도 운전할 권리를 쟁취하게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 어떻게 될지는 더 기다려봐야 할 것이다.

그럼 이제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민주주의의 과제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첫 번째 과제는 이슬람과 무슬림의 문화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민주화 바람이 일고 있지만 무슬림만은 예외이다.

물론 터키와 같이 민주주의가 성공적으로 이뤄진 이슬람국가도 있다. 그러나 무슬림은 독재정치가 여전히 존재하며, 테러 이후 오히려 폭력적 반 현대주의로 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이슬람주의가 민주주의에 도전이 될 것인가’, ‘중동권 문화의 특성상 다른 방향의 발전을 할 것인가’ 하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우선 문화시스템의 관찰 결과, 민주정치는 정치적 요소에 의해 발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무슬림 사회에서는 진정한 민주주의 불가능하다 본다. 왜냐하면, 종교와 정치의 분리가 불가능하며, 자유 민주주의와 무슬림사이에는 모순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구유럽 같은 경우에도 과거 중세시대와 같이 종교가 정치와 일치되어 있었던 시기가 있었음에도 결국 정교 분리가 일어났다. 아주 오랜 시간 종교전쟁을 하며 혼란을 겪고 종교 권위만으로 정치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정치와 종교가 분리될 수 있다고 해도 타문화를 수용할 수 있는 관용이 가능한가’ 이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이슬람 국가에서 이런 바람이 불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현대화는 전통가치관과 괴리를 가져다 주는 프로세스로 사회적 생활조건이 변화되고 가치관 변화로 인해 급진적 이데올로기의 매력에 빠지게 되는 것이며, 이런 현상은 서구유럽에서 발견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테러리스트 조직원들은 대개 서구로 이민 간 2~3세대로 원시적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놀랄 일이 아니다. 이들은 현대화 과정 속에서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가치관이 변화하게 되면서 이데올로기가 취약해진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테러리스트로 빠지기 쉽다.

현대 민주사회에서는 정체성의 정치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는 개인 권한이 아닌 공동체적 존재로서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을 뜻한다.

현대 민주국가 정치상황은 다양한 정체성과 정치적 역학관계 속에 있다.

스코틀랜드 독립운동과 캐나다 퀘백에서 부는 운동이 대표적 사례로 이들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로서 인식되길 원한다. 이런 인식이 민주주의에 위배된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공동체적 존재로 인식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아시아 쪽만 보면 일본과 한국은 잘 통합되어 있지만, 타 아시아 국가들 중에는  서로 경쟁적 관계에 놓여있는 경우가 많다.

미국도 정체성의 정치가 없는 국가는 아니다. 정체성 정치의 예로는 라틴아메리카인구, 아프리칸 아메리칸, 여성, 동성연애자 등의 집단이 공동체적 존재로 인식되길 바래왔으며, 이러한 정체성들이 상충되는 정치적 사례가 많았다.

따라서 전 세계 무슬림의 소외 현상은 모든 국가가 겪고 있는 이러한 정체성의 정치 문제의 하위개념일 뿐이다. 이것을 현대화의 결과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현대화 속에서 개인의 정체성이 약화되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개인적 질문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수준에서 민주주의 두 번째 도전 및 과제는 국가적인 수준에서의 민주주의 부재다. 예를 들어 9.11 사태에 대한 미국의 대처에 대해 대부분 미국이 국제공동체 방식에 기반해 대처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문제는 국가 내의 민주체제는 존재하지만, 국가 간에 조정 수단이 없고, 국가 간의 민주적 책임을 다루는 매커니즘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미국 연간 국방비를 보면 전 세계의 국방비를 합친 금액과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 간에 힘의 불균형이 생겨나게 되며,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국가 간 호혜가 불가능하다.

오늘날 정치와 경제는 정치 관할 구역(국가 경계)을 벗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한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 다른 나라의 삶에 영향 미치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의 국제적 제도와 기반은 국제 정치에 영향력을 미치기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물론 유엔이 국가건설 평화유지 등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국가 간의 분쟁을 다루기에는 역부족이며, 국가 간의 민주정치에 있어 근본적인 역할 수행을 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유엔안보리는 세계 2차 대전의 승전국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승전국들에게는 큰 영향 미치고 있으나 그 외의 국가에는 역할 수행을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례로 이라크 전 당시 유엔안보리는 미국의 전쟁에 정당성 을 부여할 만큼의 힘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막을 힘도 없었다.

따라서 전 세계의 민주주의에 관한 국제적 수준의 민주적 기반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는 어찌 보면 현재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의 도전과제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국제적 수준에서의 책임성을 부여할 수 있는 제도 기반이 갖춰져야 한다.
 
민주화되고 국제화된 사회에 대한 나의 비전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국제기구(세계은행, IMF, 유엔)가 변화해서 국제 사회에서 힘의 분배 관계를 조정해 나가는 것이다. 두 번째는  다양하고 새로운 국제기관을 창설하는 것이다. 이것의 예로 6자 회담방식을 들 수 있다. 이 방식이 6개 국가 간 협조 체제를 통한 동북아 안보문제 다루는 미래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동북아시아는 한중일의 국수주의 부상 등으로 많은 안보적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러나 미해결 역사 문제 등과 같은 이슈 해결에 있어 이 같은 기관이 효과적으로 안보 협력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민주주의의 세 번째 과제이자 도전은 빈곤이다.

중국, 인도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성공적인 개발이 이뤄지고 있으나 삶의 지표에 관해 퇴보하고 있는 국가도 많다. 사실 기본 생필품도 가지지 못한 상황에서 민주주의 도입은 어렵다. 이런 빈곤 국가들의 모습은 실제로는 더 어려울 수도 있다. 특히 국제화의 어두운 이면에는 문제해결을 위해 스스로 관리가 불가능한 점을 들 수 있다. 국제화에서 자유무역과 국경을 넘는 투자 등은 장점이지만, 무기n확산, 돈세탁, 블러드 다이아몬드 같은 것들이 단점인 것과 같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 강연시간만으로는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불가능하나, 빈곤한 이유는 자원부족이 아니라 좋은 제도 기반이 없기 때문이다. 공공서비스 안전 보건 서비스를 제공 못하는 무능한 정부가 빈곤의 원인인 것이다. 한국과 같은 경우는 근대화 시작 시기에 경제개발을 감당할 수 있는 공고한 제도 기반이 있었다는 점에 감사해야 한다. 라틴아메리카 등의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제도가 없었다. 

 동아시아의 일부 국가들에서 빠른 성장이 가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의 경우 역사를 보면 기본적으로 뇌물 수수가 아닌 관료 시험을 통한 관리 채용 제도가 있었다. 이러한 공고한 제도적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그 바탕위에 경제 성장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국가 들은 그런 제도 기반이 없는 상태인 경우가 많았다.

정치제도 기반확립과정은 많은 시간 요하는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빈곤 국가들이 빠른 시일 내에 이러한 기반을 확립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가 보다 부유해져야 한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네 번째 도전과제는 과학기술의 개발이다.

과학기술 개발로 현대화과정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현대화의 문제들을 기술개발로 인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과학기술이 현대사회 문제 해결 해왔지만 이것이 계속해서 가능하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계속적인 기술 개발은 오히려 인류 자체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대량 살상무기를 예로 들 수 있다. 과거에는 살인 의지가 있어도 한 번에 죽일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열 명 남짓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는 바이오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인한 생화학무기 개발 등으로 소수의 사람들이 수 만 명의 사람들을 죽일 수 있게 되었다. 즉 폭력이 광범위하게 확장된 것이다.  

또한 지구 온난화는 전 세계의 화제가 되는 등, 사회의 근간이 기술의 위협을 받고 있다. 이는 중국, 인도와 같은 국가들의 산업화로 자동차 이용률이 증가함으로써 자원 소비가 증대되는 점을 고려할 때 이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심각하다.

또한 바이오 유전공학 역시 위협적이다. 기술 발달 목적은 인간을 치료하는 것이었지만, 발전된 기술을 바탕으로 대규모 사회공학이 개발된다면, 대중의 행동 결과를 조정, 통제하게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두 번째(국가 수준의 민주주의 부재) 과제는 네 번째 과제와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 과학기술개발의 통제를 위해서는 정교한 국제사회의 공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국가별 문제 해결이 불가능한건 아니지만,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정치적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에는 이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나의 이론은 인류 사건은 경직되어 일어난다고 해석하는 칼 막스의 이론, 즉 역사는 기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며 개인의 행동이 역사를 바꿀 수 없다고 하는 그의 주장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현대화를 이끄는 힘은 분명이 있지만, 이는 기계적인 것이 아니며, 개인이나 유권자, 시민사회에 의해 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미래의 모습은 개개인이 함께 공동체적 역할을 함으로써 변화 가능한 것이다.

민주주의 도전에 대한 해답은 없지만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모든 이들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 모색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미래에 접근해 나갈 때 해결할 수 있다.

<연사 소개>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이화학술원 해외석좌교수
 - 존스홉킨스대학 교수
 - 『역사의 종말(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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