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써주는 국제교육관 경비원 김종철(59세)씨

安山貞氣 梨花人 / 안산정기 이화인(안산의 곧은 기운을 받은 이화인)

覃恩聖火 眞善美 / 담은성화 진선미
(진선미의 참뜻은 이화인들이 이 땅에서 모든이에게 사랑을 베풀고, 하의 복을 받는 것이 아닐까)

修德早和 心滿地 / 수덕조화 심만지
(전공을 일찍 익히되, 한 분야만 하지 말고 다른 분야도 공부하여 마음에 철철 넘치도록 가득 채워라)

仁義禮智 東西傳 / 인의예지 동서전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지는 곳까지 인의예지를 전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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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梨花人(이화인) ­

28자의 한자 뜻을 곱씹어본다. 첫 글자부터 마지막 글자까지 한자, 한자가 이화인들의 가슴에 와 닿는다. 오래전부터 이화 역사책 한 귀퉁이를 차지하며 전해 내려왔을 것 같은 이 시는 국제교육관에서 경비로 근무하는 김종철(56)씨 작품이다.

한시 ‘이화인’이 탄생한 건 지난 7월 밤이다. 별이 빛나는 어두운 밤 순찰을 하던 중 이화에 대한 시상이 떠올랐다. “당시 학력 위조때문에 학교가 시끄러웠는데, 그 와중에도 이화인들이 긍지를 잃지 않았으면 해서요” 이화인은 학생뿐 아니라 이화 안에 있는 교수, 교직원을 모두 포함한다. “시를 1천 장 써서 나눠주는 게 목표에요” 소원을 빌 때 천 마리 학을 접듯 이화에 대한 염원을 빌며 한 장 한 장 시를 써내려 간다. 세달 동안 이화인에게 나눠준 시만 500장이 넘는다.

한 평 남짓한 경비실에서 바쁜 업무 중 틈틈이 ‘이화인’을 적었다. 붓 펜을 들면 손바닥 만한 이면지는 어느새 작품이 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은 잘게 찢겨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줄이 안 맞거나 글씨체가 마음에 안 들어서요” 합격점을 받은 작은 작품들은 셔츠 왼쪽 주머니에 고이 간직됐다가 이화인에게 건네진다. “시를 받아가면서 기뻐하는 학생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요. 책갈피로 만들어서 평생 간직하겠다는 학생도 많죠”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고등학교 대신 서당에 다니며 한문을 익힌 그는 한문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다. 보통사람이 소학 2권까지 배우는 기간은 평균 2년인데, 6개월만에 익혔다. 지난 40년간 한문공부를 해오며 틈틈이 시도 썼다. 지금까지 창작한 작품만도 한시 7편, 한글시 200편에 이른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운 것은 겨우 반년 남짓이다. 그 후 지금까지 옥편과 고서만으로 독학해 한문을 익혔다. 오랫동안 공부했지만, 한문에 대한 욕심은 아직도 샘솟는다. 경비실 한쪽에 손때 묻은 옥편과 퇴계전집이 눈에 띈다. “지금도 모르는 한문이 많아요”

한문의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한시의 깊은 뜻을 알게 되면 자기를 낮출 줄 알고 점잖아집니다” 곧이어 경험담을 풀어놓는다. 얼마 전 새벽에 30대의 한 남자가 무단으로 교내에 침입해 소리를 지르는 등 행패를 부린 일이 있었다. “그 사람을 경비실로 데려와 차를 대접하며 제가 쓴 한시를 보여주며 뜻을 풀이해줬죠” 그 남자는 결국 한 시간의 긴 설득 끝에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시를 쓴 사람의 철학과 운명은 작품에 나타납니다” 김종철씨는 철학자가 돼 누군가의 인생을 인도하는 것이 자신의 운명인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게 언제가 될지 그는 확신할 수 없다. 이화의 미래를 점쳐달라고 부탁하자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아마 대한민국 첫 여성대통령은 이화에서 나올 겁니다”

한시 ‘이화인’이 담긴 작품을 받고 싶다면 국제교육관 2층 경비실을 방문하자. 그는 근무에 지장이 없는 한 틈틈이 시를 써서 나눠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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