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워샵 라페트 최고경영자 황보현(서양화,98년졸)씨

베고니아·글라디올러스·스파이더 릴리·프리지아….

문을 열자마자 화단 가득 핀 꽃들이 눈에 띈다. 도심 속 숨겨진 ‘비밀의 화원’같다. 꽃 하나하나에 플로리스트 황보현(서양화·98졸)씨의 손길이 묻어있다.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플라워 샵 라페트(La fete)에서 꽃보다 더 깊은 향기를 지닌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플로리스트는 플라워(flower)와 아티스트(artist)의 합성어로, 꽃을 상업적으로 이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직업을 뜻한다. 황보현씨는 현재 우리나라의 손꼽히는 플로리스트 중 하나다.

황씨는 하루종일 꽃과 함께 일한다. 아침에 생생한 꽃을 가져오고, 저녁까지 다음 날 사용할 꽃을 디자인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플로리스트가 꿈은 아니었다. “대학 졸업한 뒤, 요리·음식 쪽으로 유학을 가려고 했어요.” 요리를 배우기 위해 돌아다니던 중 장식학원에 들려본 것이 꽃과 친해진 계기가 됐다. 꽃 장식을 전문으로 하는 학원에서 유명 플로리스트 캐빈 리의 강의를 듣게 됐다. 이 시간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그의 강의를 듣자마자 ‘내가 할 일은 플로리스트다’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1년 반 동안 미국으로 가 캐빈 리 밑에서 실무를 배웠다. 무작정 달려들었던 것이 그에게는 좋은 경험이 됐다.

2001년 파티·모임 문화가 우리나라에 서서히 유입되던 시기에 그는 회사 ‘라페트’의 문을 열었다. ‘축제’·‘환희’라는 뜻의 라페트는 파티·결혼식이 이뤄지는 공간을 꽃으로 장식하는 일을 주로 하는 회사다. 지금은 플로리스트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지만,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좋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파티’는 음식을 나눈다는 인식이 강했어요. 공간 장식은 그에 비해 중요하지 않았죠.”초기에는 받을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사용해 파티를 장식해 주기도 했다.

20대 중반의 젊은 사장, 게다가 여성이라서 겪은 어려움도 컸다. “포트폴리오를 들고 찾아가면 ‘사장 어디 있느냐, 사장 데려오라’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편견을 없애고 싶어서 짙은 화장에 머리를 올려 묶고, 바지만 입고 다녔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 모든 경험이 지금의 젊은 CEO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로 영화배우 브래드피트(Bradley Pitt)와 제니퍼애니스톤(Jennifer Anniston) 결혼식의 웨딩 장식 일을 꼽았다. 세계적인 스타의 결혼식이라 그런지 보안이 매우 철저했다. “결혼식 몇 개월 전 모든 직원들의 신상정보를 작성해 보내야 했고, 장식에 필요한 재료들도 제공해 주는 것만 사용했어요.”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것조차 007작전을 방불케 했지만 결혼식 장식과 행사 모두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꽃을 생명력 있게 디자인하는 직업인 ‘플로리스트’에게 아이디어는 생명이다. 영화·잡지 등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것이면 모두 접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외국 여행은 그의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해외로 나가지 않으면 뒤쳐진 느낌이 들어서 불안해요.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여행을 가죠.” 이국적인 외국의 풍경·우리나라와 다른 특이한 색감 등은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준다.

현재 황씨가 운영하는 라페트의 연매출은 15억이다. 올 가을에는 라페트 웨딩 컴퍼니도 설립했다. “중국에 지사도 설립할 예정이고, 사업도 여러 개 시작 할 계획입니다. 아직 갈 길이 멀었죠.” 미래를 말하는 그의 어조는 흔들림이 없다. 내일을 향해 돋은 그의 꽃봉오리가 활짝 피어날 모습을 기대해 본다.

유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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