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인력이 국내용 인력이었다면, 21세기의 인력은 국제용 인력이다. 이런 국제용 인력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뛰어난 외국어 구사능력이다.

모국어인 한국어와 세계어인 영어는 물론이고, 인근지역어인 중국어나 일본어 하나쯤은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좀 더 큰 야심을 가진 학생이라면 유럽연합의 주요 언어인 불어나 독일어도 하나쯤은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 ‘외국어 다다익선(多多益善) 시대’가 온 것이다.

이런 새로운 시대를 맞아 학교는 학교 나름대로, 학생은 학생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외국어 교육의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여전히 아쉬운 점이 없잖아 있다.

그 아쉬움 중 하나는 학생들에게 외국어의 중요성만 강조할 뿐 그 효과적인 학습 방법은 가르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외국어교육학적으로 말해, 성인의 나이인 대학생들은 외국어를 자연스럽게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습득’하는 단계는 이미 지났고, 외국어를 의도적으로, 의식적으로 ‘학습’하는 단계에 있다. ‘습득’ 단계에서와는 달리 이 ‘학습’ 단계에서는 학습 방법이 더없이 중요하다. 그래서 요즘 외국어교육학계에서는 교수 전략과 함께 학습 전략을 전례 없이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현행 대학 교육과정 속에는 이런 학습 방법을 체계적으로 가르쳐 주는 강의가 없다. 그러다보니 많은 학생들은 요즘도 70, 80년대 유행한 ‘외국어에는 왕도가 없다’는 전제 하에 무조건 열심히만 하고 있다. 이는 차를 몬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복잡한 자동차의 구조를 배우고, 정지한 상태에서 운전대만 이리저리 돌려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70, 80년대에 비해 사회 여건과 교육 여건이 많이 바뀐 지금 이런 구태의연한 교수-학습 방법은 마땅히 재고해야 한다.

그렇다면 효과적인 외국어 학습 방법을 가르친다는 것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무엇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인가? 그것은 인간의 언어는 자의적(恣意的)이지만 사회적 구속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모국어와 외국어는 시기, 방법, 여건 등에 있어서 상이하다는 사실,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은 단어와 같은 언어적 요소뿐 아니라 강세와 억양과 같은 준언어적 요소, 그리고 동작과 같은 비언어적 요소로도 이루어진다는 사실, 외국어 학습에는 음성적, 통사적, 문화적 간섭 요인이 있다는 사실, 외국어를 배울 때에는 언어, 문화, 동작을 모두 배워야 한다는 사실, 듣기-말하기-읽기-쓰기 네 가지 능력에는 각각 고유한 특성이 있으므로 그 특성에 알맞은 방법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 등을 학생들에게 충분히 이해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학생들로 하여금 ‘배우기를 배우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외국어 학습의 이해’(가칭)라는 강의를 교양과정 속에 개설해 주는 것이다. 비록 한 학기에 불과할지라도 이런 강의는 학생들의 외국어 학습에 도움을 줄 것이고, 나아가서 이화인의 국제경쟁력을 드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특별히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은 몇 년간 실시하다 얼마 전에 그만 둔 ‘영어인증제’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 인증제를 그만 둔 것은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사실 이 제도는 그 출발부터 많은 교수들의 우려와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 주된 비판 중 하나는 ‘영어인증제’를 위해 우리 대학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우리 대학은 학생들에게 ‘이화여대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이런 정도의 영어구사능력은 가져야 한다’고 요구만 했지 그런 능력을 신장시키는 데 도움을 준 것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이제 대학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기에 앞서 학생들을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장한업 (인문대학 불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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